오피니언 사설

환율 손대 수출 늘리던 시절은 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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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새 정부의 경제팀장 격인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이 “기획재정부가 환율정책의 주도권을 가져야 한다”는 입장을 피력했다고 한다. 성장을 중시하는 강 장관의 발언은 수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환율을 올리는 쪽으로 적극적인 환율정책을 운용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본래 기획재정부 소관인 환율정책을 두고 굳이 주도권을 갖겠다고 주장한 것은 외환시장 관리업무를 사실상 담당하는 한국은행에 대한 불만을 드러낸 것이기도 하다. “중앙은행은 원화 강세를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환율정책과 상치되는 측면이 있다”는 언급은 바로 이 같은 속내를 보여준다. 요컨대 강 장관의 발언은 시장 개입을 통해서라도 환율을 높게 유지해 수출을 늘리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국내외적으로 성장에 불리한 여건 속에서 어떻게든 경기를 살려보겠다는 강 장관의 의도 같다. 그러나 인위적인 환율 인상을 시사한 강 장관의 발언은 여러모로 적절치 않다. 우선 환율로 수출경쟁력을 높이겠다는 발상 자체가 구태의연하기 짝이 없다. 과거 정부 주도로 경제가 운용되던 시절엔 이런 식의 인위적인 수출 확대 정책이 먹혔을 수 있다. 그러나 외환시장이 자유화되고 자본시장이 개방된 마당에 시장 개입을 통한 환율 조작은 한계가 있을뿐더러 그 효과도 의심스럽다. 오히려 국제적으로 환율조작국이란 오명을 자초하고, 급격한 환율 변동의 위험성만 높일 뿐이다. 더구나 세계적으로 원자재값이 급등하는 상황에서 환율을 억지로 올릴 경우 수입물가 상승으로 인한 인플레이션만 부추길 가능성이 크다.

설사 환율 방어가 필요하다고 하더라도 이를 공개적으로 언급하는 것 자체가 신중하지 못한 처사다. 정히 필요하다면 한은과의 협의하에 조용히 시장에 개입하면 될 일이지 주도권을 잡겠다고 나설 일이 아니다. 기획재정부의 신임 장·차관 스스로가 과거 외환정책을 담당하면서 무리한 시장 개입으로 실패를 경험하지 않았던가. 인위적인 환율 조작은 반짝 효과는 거둘지 모르지만 결국은 그 대가를 치르게 된다. 정부는 환율에 관해 섣부른 언급을 자제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