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장관과 말의 책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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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행정부의 장관이라면 해당 부처의 책임자임과 동시에 국가정책을관장하는 각료의 일원이다.따라서 장관의 말과 행동은 사인(私人)이 아닌 공인(公人)으로서 권한과 책임을 동시에 진다.이 때문에 남의 나라인 일본(日本)의 장관이 일제(日 帝)의 만행을미화하려 들면 우리가 망언이라고 규탄하고 비판까지 서슴지 않게되는 것이다.그러나 이웃 나라 장관도 아닌 내 나라 교육의 책임을 진 장관이 「6.25는 명분 약한 동족상잔」이었고,월남전엔 「용병」으로 참전했다는 실언( 失言)을 넘어선 망언(妄言)을,그것도 국방대학원의 현역장교들 앞에서 했다니 말문을 열기도부끄럽다.
6.25가 명분 약한 동족상잔이라면 북한 공산정권의 남침(南侵)을 이미 구소련까지 인정한 마당에 쳐들어오는 공산군에 그냥나라를 내놓는 게 옳았다는 말인가.월남 파병은 여러 곡절끝에 정부가 결정한 사안이었다.재야쪽 시각이라면 용병 이라는 주장도할 수 있을지 모른다.그러나 지금 와서 정부 각료가 지난 정부의 「파병」을 「용병」이라고 규정한다면 이는 정부의 연속성을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발언 아닌가.
발언시비가 일어 당사자가 해임까지 된 마당에 더이상 왈가왈부하고 싶지도 않다.그러나 정부의 책임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더이상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도 김숙희(金淑喜)장관의 그동안 말의 해프닝에 대해선 좀더 천 착해볼 필요가있다.우선 金장관은 발언이 문제가 되면 그런 말을 한적이 없다고 부인부터 하곤 했다.이번 6.25발언에서도 그런적 없다고 부인했다.그러나 수강장교 대부분이 그렇게 들었다고 하니 이게 웬일인가.
비슷한 해프닝은 몇달전 「내신성적 반영비율 대학자율화」와 「20여 사립학교 평준화 해제」발언 때도 있었다.그 때마다 개인자격으로 기자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말했을 뿐이라고 둘러댔다.내신성적이나 평준화문제는 교육개혁을 앞두고 누구나 신경을 곤두세우는 교육정책의 중대관심사로 金장관의 개혁의지는 평가할만한 측면이 없지도 않다.그러나 자신의 소관사에 대해서 장관이 구체적으로 정책화할 수 있는,준비없이 불쑥 불쑥 내놓는 사견은 혼란만 야기할 뿐이다.6.25와 월남파병 발언에 대해 즉각 책임을물은 것은 잘한 일이지만 장관의 발언이 허언(虛言)이나 망언(妄言)에 이르기까지 방치하는 일은 더이상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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