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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치기 권하는 사회

중앙일보

입력

중앙SUNDAY

대선후보에 국회의원 후보들까지 점집으로 몰려가는 까닭은
점복이 한국인의 불안을 반영하는 거울이기 때문
예측가능한 세상만이 '직관적 추측언어'에 대한 의존도를 낮출 수 있어

하늘을 떠도는 별과 형체 없는 시간을 틀어쥐었다고들 하는 21세기 문명사회에서도 여전히 ‘직관적 추측언어’가 위세를 떨치고 있다. 늙은 창녀는 화투짝 확률에, 자식의 대학입시를 앞둔 아낙네는 미아리로, 시집갈 처녀는 인터넷 사주점과 타로카드에 사이버머니를 걸고 있다. 하긴 월드컵 축구경기는 세계인이 보는 앞에서 먼저 동전을 던져 ‘천하’를 양분한다. 이는 손바닥에 뱉은 침을 튕겨내 방향을 정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여섯 모서리인 주사위 던지기는 차라리 현명한 축에 낀다고 하겠다.

점복(占卜)은 디지털시대 합리와 과학을 비웃듯 삶에 대한 불확정성을 자양분으로 팽창을 거듭해 왔다. 선거를 비롯한 정치와 사회, 기업 경영과 면접, 혼인에 이르기까지 점의 더듬이가 가 닿지 않는 곳이 없다. 턱이 빈약해 제왕 관상이 아니어서 대권을 놓쳤다는 말쯤이야 항간에 흔히 떠도는 담설이다. 아내가 제왕 부인상이어서 권좌를 거머쥐었다는 내력 없는 소리도 선술집에서 안줏거리가 된다. 점복이 민주적 절차마저 뛰어넘어 예단으로 감히 ‘국운’에 영향을 끼치고 있는 셈이다.

일찍부터 내일을 알지 못하기는 눈 뜬 이나 감은 이나 다를 바 없었다. 조선 최고 점쟁이들은 맹인들이었다. 그 시각장애인들은 태생적 또는 후천적으로 얻게 된 막막한 어둠 속에 들어앉아 보지 못하는 시선 저편 세상을 눈 뜨고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전했다. 캄캄한 만큼 ‘직관의 합리성’이 더 발달했는지도 모르겠다.

봉건왕조가 이들에게 점을 치고 제를 올리도록 한 건 장애인 구제책의 성격도 무시할 수 없다. 몸값이 만 냥이면 눈 값이 구천 냥이라 했다. 대부분 근육노동을 해야 입에 풀칠을 할 수 있었던 농본사회에서 이들의 생계는 비참했다. 심 봉사가 딸을 구걸시키는 대목은 이를 잘 말해주고 있다.

‘태복감’은 고려 때 점복행정을 관장하던 기관 이름이다. 이성계도 서울을 옮긴 뒤 눈먼 승려들이 사는 절(명통사)을 지어주고 축원하게 했다. 세종은 맹인에게 천문·음양학·육효·명리요강·사주를 두 해 동안 가르쳐 길러내는 ‘서운관’을 운영했다. 효종이 서울 저동에 ‘맹청’을 세워 맹인 역술인을 배려한 건 눈먼 셋째 아들이 새 삶을 찾은 데서 비롯되었다.

영·정조대에 900명 가까웠던 ‘맹청’이 사라진 건 갑오개혁(1894) 때였다. 동학봉기 실패 등으로 도탄에 빠져 한 치 앞길을 알 수 없던 그해, 외래에서 밀려온 시대는 ‘짐작 언어 종사자들’을 몰아냈다. 미신 타파를 맹렬하게 전개하던 식민통치 시절, 이윽고 맹인 역술인은 총독부 앞 집회까지 벌이면서 맹인조합 ‘역리대성교’를 결성한다(1925). ‘나랏점’이 아님에야 총독부가 이들을 두려워할 것까지는 없었을 터다. 맹인들이 세력을 모을 수 있었던 바탕에는 어쨌든 광범한 점복 소비자들이 있었다.

종로3가에 터를 잡고 있던 맹인 점술가들은 한국전쟁 뒤 남산 아래로 옮겨 갔다가 이윽고 미아리에 정착했다. 이들은 이곳에서 한국인의 사주·신수·택일·이사·취직·작명을 책임지고 한 세월을 살아냈다. 제 운명을 어찌하지 못하는지라 타인의 운세가 더 잘 보였을지도 모른다. 6·25전쟁 시기에 점은 널리 유행했다. 피란의 상징인 부산 영도다리에도 점집이 즐비했다.

점복의 크기는 사회 불안의 크기를 고스란히 반영한다. 그러므로 미아리는 미아리에만 있는 게 아니다. 1997년 외환위기에 따른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는 한국인이 점집을 더 찾는 계기로 작용하면서 디지털화한다. 토정비결·관상·(당)사주·농점(農占)·동물점·해몽점·관상·동전점·거북점·실패점 따위는 러시안 카드점, 수정 구슬점, 타로 카드점, 행운의 코디점 등속으로 모양새를 갈고는 신세대 점복으로 등극한다.

점 소비자가 하향하고 있다는 건 취업난과 함께 씁쓸한 입맛을 지우기 어렵게 만든다. 복을 묻는 내용 또한 달라졌지만 아낙들이 자문하는 첫 번째는 단연 ‘외도’라는 점은 변하지 않고 있다. 다만 남편이 출장 간 사이에 외간 사내와 만나도 안전한지를 묻는 건 점이라기보다 인생 상담에 가깝다고 해야겠다. 이를 갸륵하다고 해야 할 것인가.

근래 들어 사업·취업·혼인을 위한 관상 성형이 큰 시장을 형성하면서 의사들까지 관상·사주 공부에 매진하고 있다. 신문·잡지들이 이들과 동침하고 있다고 봐도 될 터다. ‘칼 맞을 운세’ ‘코가 낮아 재물 운이 없다’고 여기는 독자나 소비자가 있는 한 이러한 세태는 쉬 자취를 감추지 않을 게다.

한국인이 얼굴 성형에 집착하게 된 건 남방계 중심으로 외모 기준이 변화하고 겉모양에 대한 노골적 관심 고조도 있지만, 구제금융 사태 이후 학력 이외에 새로운 자격증을 요구하는 사회 분위기에서 말미암고 있다. 단박 좋은 인상을 주는 게 영어 점수에 비길 수 있다지 않은가. 인권과 양성평등을 추구하는 사회에서 얼굴이 계급이자 상품이라는 건 퇴행적 징후임에 분명하다.

한국에서는 어른 열에 넷이 점을 치고 있거나 점을 보고 있다. 무속인·역술인 등이 많게는 50만 명을 헤아리기도 한다. 점을 배우겠다는 이는 남자가 압도적으로 많다. 창업을 위한 점 공부를 시키는 단기 속성 학원도 성업 중이다. 이들은 대개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가장들이다. 사주팔자 사이트와 사주카페를 넘어 영화관·대형할인점·백화점에서도 고객을 끌어들이는 데 점을 이용하고 있다. 점복산업은 영화산업과 크기가 맞먹는다. 100억원대 매출을 올려 주식 상장을 노리는 곳도 있고, 10개 남짓한 대학에도 역술과가 생겼다. 시각장애인이 학생이 아닌 것은 물론이다.

세상과 미래에 대한 직관이 강한 사회는 불행한 사회다. 점은 사회 위기를 숙주로 영역을 확장해 왔다. 과학의 비과학성이 문제가 아니라 예측 불가능한 사회가 점복 배양실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과학화한 근대 이래 그치지 않고 이어진 크고 작은 환란들은 흉을 피하기는커녕 한국인의 일상을 격동 속으로 몰아넣어 왔다. 그에 따라 점복은 불안한 한국인에게 음성적 의지처로, 고백 상담소로 구실해 왔다. 때로 대리인의 추측을 세상사를 판별하는 준거 틀로 삼아야 했다. 이는 정치를 비롯한 사회적 장치들이 대중을 달래고 치유하는 데 미진했음을 여실히 방증할 따름이다.

어떤 큰 저울로도 미래를 달 수 없고, 아무리 긴 자로도 내일을 잴 수 없으며, 가장 큰 거울로도 모래를 비출 수는 없다. 자와 저울은 오지 않은 시간 앞에서 무용하다. 그 자와 저울이 정치이자 법이고, 원칙 있는 시장이다. 이번 총선에 나서는 이들은 점을 쳐 출사와 성패를 기대기보다 정치 소비자인 대중의 하소연에서 운을 구할 일이다.

글 서해성(소설가),사진 권혁재 전문기자


물질문명이 급속하게 삶의 중심에 자리 잡은 20세기를 일상을 중심으로 되짚어볼 서해성씨는 소설가이자 이주노동자 가족을 위한 문화인권 프로그램 ‘아시아스타트’ 위원장으로 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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