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포럼>중소기업인 누가 괴롭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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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정부의 경제대책 가운데 중소기업의 지원에 관한 대책만큼 자주나오는 것도 드물다.신문의 경제면을 펼쳐보면 거의 매일 중소기업 지원에 관한 기사를 접하게 된다.兆단위가 넘는 각종 지원자금에다 신용대출 대상기업을 확대하고 어음할인폭을 넓히며 중소기업전담 할부금융 회사의 설립을 지원한다는등 각종 대책이 다양하게 쏟아진다.
지원방법의 가짓수가 너무 많아 혼란스러울 정도다.이런 지원책이 제대로만 집행되면 이제 중소기업들은 돈걱정 안하고 사업을 잘 할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그런데 실상은 정반대다.하루에도 수십개의 중소기업들이 문을 닫는다.제법 이 름이 알려진중견그룹도 자금난등에 시달려 은행손에 넘어가는 경우가 있다.그러니 매달 부도율이 최근년의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는 것이다.
자금난.인력난.기술난으로 집약되는 중소기업의 문제는 어제 오늘의 과제가 아니다.어느 정권도 시원하게 풀지 못한 숙제다.자금의 공급여력이 넉넉하고 중소기업의 경영환경이 개선되지 않는한가까운 시일안에 해결될 일이 아니다.이런 근본문 제와 관련,중소기업인들은 또다른 문제로 큰 괴로움을 겪고 있다.사람의 문제다. 안으로는 직업윤리가 없는 근로자들 때문에 속썩이고,밖으로는 상전(上典)노릇하는 은행원과 대기업의 실무자들한테 큰 시달림을 받는다.
중소기업은 사람 구하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제조업의 경우 숙련기능공 구하기는 하늘의 별따기다.온갖 정성을 다해 키워놓은 기능공이 하루아침에 말없이 사표를 낸다.돈 몇푼 때문이다.이런 경우도 있다.
경기도광명시 주변에서 정밀시계부품공장을 운영하는 S社는 사람에 시달려 공장을 완전 자동화시켰다.꼭 필요한 기술자 2명만을고용했다.
그런데 어느날 이중 한명이「더 많은 대우」를 해준다는 다른 회사로 떠나버렸다.정밀을 요하는 공작기계분야라 갑자기 사람을 구할 수가 없었다.생각다 못해 경영주는 자신이 직접 기술자가 되어 사람을 쓰지 않기로 했다.그는 직업윤리관이 땅에 떨어졌다며 한숨을 지었다.
기능공 문제는 내부의 일이다.중소기업인을 더욱 비참하고 괴롭게 하는 것은 거래은행원과 대기업의 실무자들이다.
물론 업종.기업에 따라 차이가 많다.신용대출을 늘린다는등 달콤한 대책은 많지만 막상 은행문을 노크하면 중소기업인에게 문턱은 여전히 높다.서류를 준비하고 담당대리등을 찾아가면 조건이 왜 그리 까다로운지,그리고 대하는 태도가 사뭇 권 위주의적이다.시중은행보다 국책은행이 더 심하다.서류심사단계를 거칠 때마다「기타비용」을 준비해야 한다.휴가때나 명절때가 되면「인사」를 해야 한다.모른체 했다가는 나중에 더 큰 곤욕을 치르게 된다.
은행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그렇 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이들은 은행원의 입장을 이해하려 한다.예금유치를 위한 활동비,감독관청에 대한 섭외비등 많은 경비가 필요하다.은행자체경비로 충당해야 하나 현실이 그렇지 못하니 결국 거래선에신세질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여하튼 은행의 이런 악습(惡習)이 고쳐지지 않는 한 은행자율화는 기대할 수 없다는게 중소기업인의 공통된 생각이다.
대기업 실무자들이 중소기업인을 괴롭히는 것도 마찬가지다.봉급등 여건이 은행원보다 훨씬 나은데도 항상 협력 중소기업인들에게군림하려 든다.감독관처럼 상전노릇을 한다.계약단계에서 자금결제에 이르는동안 여러 조건을 내세우며 뜸들이기 일 쑤다.그때마다「기타비용」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관청에서 당한 것을 그대로 배워 힘없는 중소기업인에게 적용한다는 것이다.
모든 대기업이 다 그런 것은 아니다.품질만 좋으면 시원하게 결재하는 곳도 있다.
좋은 제품을 만드는데 온 정성을 다해도 일본.대만기업을 따라가기가 힘겨운 상황이다.그런데도 중소기업인들이 사람을 접대하는일에 많은 시간.돈과 인력을 낭비토록 해서야 되겠는가.
중소기업은 우리 경제의 허리다.허리가 튼튼해야 경제가 잘 된다.중소기업이 잘 자라야 은행이 크고 대기업이 성장하는 것이다. 은행이나 대기업 사람들은 그들의 광주리에 달걀을 낳아주는 중소기업을 괴롭히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았으면 한다.정부도 이점을 깊이 음미해봐야 할 것이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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