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3國의 베트남 신드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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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30년전 우리의 첫 전투부대가 베트남에 도착했을때 병사들 사이에「1달러짜리 목숨」이라는 말이 떠돌았다.하루에 1달러씩 한달에 30달러짜리 군표(軍票)를 받았기 때문이다.전쟁터에 도착해 사흘만에 죽은 사병의 유해위에 3달러를 올려놓 고 눈물을 뿌리던 부대 재무관의 말이 생각난다.
『왜 30달럽니까.1백달러를 받을 수는 없습니까.』 65년 10월의 이야기다.30년뒤 하노이에 가보니 썩 좋은 한달벌이라야 1백달러였다.이 가난을 모르고는 민족주의의 뿌리를 알지 못한다. 로버트 맥나마라의 회고록을『참회록』이라 부르는 것은 잘못이다.맥나마라는 베트남戰을 확대시킨 장본인이다.그가 쓴 책은참회록이 아니라 오판(誤判)으로부터 교훈을 얻자는 것 뿐이다.
월남이 무너지면 동남아가 적화(赤化)되리라던 도미노 이론의 허구(虛構),그리고 첨단무기를 가진 50만의 미군을 무력화한 민족주의의 힘을 미처 몰랐다는 것이 회고록의 알맹이다.권력의 오만에 대한 반성일지 모르지만 참회의 눈물이나 사과와는 엄연히 다르다.되레 미국의 국제 개입주의(介入主 義)를 위한 교훈으로삼자는 대국주의 발상이 그대로 깔려있다.우리로 말하면 미국식 민족주의다.그 자존심이「집단우울증」에 걸린 것이다.전쟁이 끝난지 20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깨어나지 못하고 있는 베트남신드롬.패자(敗者)병이다.
베트남도 그 병을 앓고 있었다.승자(勝者)병이다.통일 후유증인지도 모른다.통일의 대가가 너무 크다는 신세대의 반발이 거세다.전쟁세대에 대해 빈곤에 대한 책임을 묻고 있다.베트콩 푸대접도 문제였다.캄보디아 주둔군이 철수한 것도 미국 의 압력이 무서워서가 아니다.점령군이 밀수꾼으로 변하고 있었던 것이다.방향을 잃은 군대는 쓸모가 없다.그 용맹스럽던 베트남군은 지금 차(車)와 장사에만 관심을 쏟고 있다.
우리에게는 베트남 신드롬이 없는가.있다.왜 남의 나라 전쟁에뛰어들어 피를 흘렸던가.왜 돈에 팔려갔던가.버림받은 핏줄「라이따이한」은 어쩔 것인가.
베트남 종전(終戰)20주년 취재를 위해 하노이에 가보니 되레그들이 답을 주고 있었다.
『우리는 미국을 상대로 한 항전(抗戰)에서 이긴 것이지 한국과 싸웠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외교적 수사일 수도 있지만 신세대도 같은 반응이다.『우리는 외세(外勢)와 싸워 이겼다. 한국은 외세로 보지 않는다.한국도 외세에 시달려 왔지 않은가.』 이것이 맥나마라가 데었다는 민족주의의 뜨거운 맛이다.
우리는 경제 용병(傭兵)이라는 말에 우울증에 걸리지 말아야 한다.말이야 자유의 십자군이었지만 그게 사실이었으니까.실전(實戰)경험을 쌓고,무기를 현대화하고,6.25때 진 민족의 빚을 갚고 해외진출의 활로를 튼 것이 사실 아닌가.베트 남을 치러 간 것도,팔려간 것도 아니다.민족을 지키기 위해 우리 스스로 택한 길이었음을 떳떳이 인정할 수 있을 때 자주적 민족주의는 정당한 자리매김을 받을 수 있다.
치유될 수 있는 전쟁은 없다.지울 수 있는 과거도 없다.오직내일을 창조할 수 있을 뿐이다.베트남에서 고지를 확보한 병사들이 정상에 태극기를 꽂으며 손짓할 때 필자가 불쑥『여기가「이오지마」요』라고 물었던 옛 기억이 새롭다.
베트남은 지금 가난과 전쟁중이다.이 전쟁에 우리가「동맹」이 되어줌으로써 지난날 썩은 정권의 동맹자가 되었던 빚을 갚고 두나라의 새롭고 밝은 관계를 창조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부질없는 전승비들은 부서졌지만 따이한이 세운 병원과 학 교,도로와 태권도는 거기 남아있었다.따이한의 따스한 우정을 전하면서-.
〈칼럼니스트.政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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