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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 타협도 연민도 없다 오직 탐욕만 있을 뿐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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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주인공 플레인뷰는 마을에 작은 교회를 이끄는 목회자 청년 선데이<左>와 평생의 악연을 쌓는다. 플레인뷰는 선데이의 광신적인 신앙에 노골적인 반감을 드러내면서도, 사업을 위해 그의 교회에 나가 무릎을 꿇는다. 플레인뷰를 연기하는 대니얼 데이 루이스는 물론이고, 선데이 역할의 낯선 젊은 배우 폴 다노의 연기도 만만치 않다.

‘데어 윌 비 블러드’는 무시무시한 영화다. 이런 캐릭터가 또 있었나 싶을 정도로 탐욕과 이기적 열정으로 똘똘 뭉친 사내가 주인공인데, 그 캐릭터를 일말의 반성이나 연민 없이 극한까지 밀어붙이는 연기의 힘이, 영화의 힘이 무섭도록 위력적이다.

영화는 흙 범벅이 돼 얼굴도 알아보기 힘든 남자가 숨이 막힐 정도로 좁은 수직갱을 파내려 가는 모습을 한참이나 보여주며 시작한다. 주인공 대니얼 플레인뷰(대니얼 데이 루이스)다. 황금도 아니라 은을 찾는 광부였던 그는 이렇게 검은 황금, 즉 석유를 찾아낸 덕분에 성공가도를 달리기 시작한다.

채굴 현장의 바구니 속에서 천진하게 놀던 갓난 아기는 소년 H W 플레인뷰(딜런 프리지어)로 자라나 아버지의 어린 동업자 역할을 하게 된다. 아버지 플레인뷰가 석유가 묻힌 곳을 수소문해 주민을 설득하고, 무서운 추진력으로 새로 유정을 발굴하던 어느 날, 낯선 청년이 찾아와 고향의 정보를 팔아넘긴다. 그렇게 찾아간 황량하고 가난한 마을 리틀 보스턴은 한마디로 ‘노다지’였다. 플레인뷰는 특유의 열정으로 주민들에게 부를 약속하며 마을의 땅 대부분을 사들인다.

‘데어 윌 비 블러드’는 20세기 초 석유개발시대의 서사시가 아니라 플레인뷰라는 캐릭터의 서사시다. 플레인뷰의 독특한 개성은 그를 미국 자본주의 기업가의 전형으로 단순 치환할 수 없게 한다. 대형 석유회사와의 경쟁심도 대단하지만, 점차 광신적 신앙에 대한 공격적 혐오감을 드러낸다.

마을에서 작은 교회를 이끄는 광신도 청년 엘라이 선데이(폴 다노)야말로 플레인뷰의 적으로 떠오른다. 유정탑을 세우는 날, 축성을 맡겨달라는 선데이의 요구를 무시하면서 갈등이 뚜렷해진다. 나중에 사업 때문에 선데이에게 머리를 숙여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면서, 두 사람 사이에는 되로 주고 말로 갚는 식의 감정적 앙금이 커져간다.

일이 인생의 전부고, 현장이 곧 집인 플레인뷰는 고독한 인간이자 냉정한 탐욕으로 고독을 자처하는 인간이다. 관객들은 어린 아들에 대한, 또는 있는 줄도 몰랐던 이복동생에 대한 그의 고통스러운 애정을 엿보면서 잠시 연민을 품을 수는 있지만, 영화는 플레인뷰를 결코 스스로를 연민하지 않는 캐릭터로 완성해 간다.

세월이 흘러 부자가 될 만큼 성장한 그는 육체는 약해졌을망정 마음은 조금도 약해지지 않았다. 오히려 가장 아끼던 이에게 차마 입에 담지 못할 폭언을 퍼붓고, 값싼 타협으로 화해할 수 있는 순간에도 상대방을 야멸차게 파괴시킨다. 이런 인간이 도달한 곳이라면 영화의 제목(There will be blood)이 예언하는 대로, 피가 상징하는 파국일 따름이다.

‘데어 윌 비 블러드’는 올 아카데미상 8개 부문에 후보로 나란히 오른 코언 형제의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에 작품상·감독상·각색상 등 알짜를 모두 내주었지만, 사실 두 영화의 감독은 비슷한 ‘과’다. 늘 지독히 미국적인 소재·주제의 영화를 만들면서도 아카데미가 상징하는 할리우드 주류영화의 스타이기보다는 칸·베를린 같은 유럽영화제에서 더 사랑받는 작가라는 점에서다.

‘리노의 도박사’(1996년작)나 ‘부기 나이트’(97년) 때만 해도 미국 독립영화계의 참신한 재능쯤으로 보였던 폴 토머스 앤더슨은 야심찬 형식과 주제의 ‘매그놀리아’(99년)로 베를린영화제 황금곰상을, 비교적 소품이되 사랑스러운 영화 ‘펀치 드렁크 러브’(2002년)로 칸영화제 감독상을 임권택 감독과 공동 수상하면서 세계적인 작가의 반열에 올랐다.

그 같은 수상작들을 포함해 대개 현대의 작은 이야기를 즐겨 다룬 전작들에 비해 시대극인 ‘데어 윌 비 블러드’는 퍽 이례적인 영화이자 이 감독이 ‘거장’으로 가는 궤도에 올랐음을 짐작하게 하는 작품이다.

이 영화와 궁합이 안 맞을 법한 관객이라면 2시간38분에 달하는 상영시간 역시 무섭게 느껴질 수 있다. 업톤 싱글레어의 소설 『석유』(1927)를 원작으로 삼았는데, 원작을 고스란히 영화로 옮기는 대신 감독이 매료된 대목을 중점으로 각색했다. 6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이후남 기자

주목! 이 장면 올해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은 대니얼 데이 루이스의 연기는 영화 내내 그렇지만, 특히 플레인뷰가 선데이와 다시 만나는 마지막 대목에서 ‘압도적’이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힘을 뿜어낸다. 플레인뷰는 궁지에 몰린 쥐를 놓아주기는커녕, 잔인하게 놀려대다가 마치 소를 잡는 듯한 태도로 몰아친다. 맨몸뚱이로 땅밑에서 시작해 어마어마한 성공에 이른 한 인간의 내면, 확신범 수준의 자존심과 이기적 욕망의 결정체 같은 외골수의 내면이 일체의 동정도, 미화도, 타협도 거부한 채 날것으로 관객 앞에 내던져지는 결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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