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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세 老母봉양하는 70代 老부부의 孝실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3면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시면서도 항상 자식생각뿐이십니다.「밥을 많이 먹어라.차를 조심해라」등 어릴적 잔소리가 조금도 줄지 않으셨어요.어머님이 보실 땐 늙은 저 역시 언제나 어린아이랍니다.』 주름살이 깊게 팬 남준근(南俊根.71.경기도고양시주엽동 문촌마을 우성아파트)씨는 거동이 불편한 노모 이연이(李連伊.89)씨의 잔소리에 어리광섞인 표정으로 「씨익」웃는다.
43년동안 경북예천.문경지역 국민학교에서 한 평생을 보내고 교장직을 끝으로 90년 정년퇴직한 南씨는 4남2녀를 모두 출가시키고 부인 이점순(李點順.70)씨와 함께 노모를 모시며 생활하고 있다.교단에서 효(孝)를 강조하면서도 학교생 활에 쫓겨 노부모 봉양을 제대로 못해 마음 한구석 죄스럽게 여겨오던 南씨는 퇴직과 동시에「효실천」에 나섰다.
그러나 아버지 남상직(南相稙)옹은 이미 타계한지 1년이 지난뒤라 안타까움은 여전했다.
아침마다 인근 정발산 약수터에 노모를 모시고 가 함께 가벼운맨손체조도 하고 외출할 때마다 길안내를 맡는등 성심성의껏 보살피기 시작,주위에 「할아버지 효자」라는 소문이 퍼졌다.그러나 노모도 세월에는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는 듯 지 난해 10월 중풍으로 쓰러져 거동이 불편해졌다.혼자 다니기가 힘들 지경이라자리에 누워있는 시간이 더 많다.몸져 누워있는 노모의 음식수발을 하고 대소변을 받아내는게 요즘 南씨부부의 주요 일과가 됐다. 『모실 수 있는 어머니가 생존해 계시다는 것 자체가 큰 행복입니다.』 南씨는 노모보살피기 속에서도 가족끼리만이라도 효의정신을 잊지말자는 뜻에서 가족사를 기록한『나의 뿌리와 가지』,교직생활동안 학생들에게 효정신을 일깨워주려고 애쓴 갖가지 단상을 모은 『나의 교직의 길』등 두권의 책을 집필했다.
『해를 거듭할수록 효정신이 사라지고 아이들이 예절을 모르고 자라나는 것 같아 안타깝기 짝이 없습니다.그래서 손자.손녀들에게 뿌리를 인식시키고 웃어른에게 공경의 마음을 갖도록 글을 썼습니다.』 『나의 뿌리…』는 선조들의 일대기,살아있는 자손들 얘기등을 다채롭게 엮었다.
南씨는 이를 20여권 만들어 일부는 자녀들에게 나눠주고 나머지는 집 건넌방에 비치해 놓고 틈틈이 찾아오는 손주들에게 읽어주곤 한다.조상들의 발자취를 설명,효의 중요성을 강조하다 보니손주들이 어른들을 대하는 태도가 하나씩 달라지고 있다고 南씨는말한다. 국립박물관 노인대학생이기도 한 南씨는 박물관이 시민들의 무질서와 쓰레기로 더럽혀지는 것을 보고 혼자서 박물관 주변쓰레기 청소를 시작했다.민족의 얼과 유품을 담고있는 박물관을 깨끗히 유지하는 것이 바로 효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요 즈음에는 20여명의 동료노인들과 함께 매월 한번 정례적으로 박물관 안내와 쓰레기 청소를 하고 있다.
南씨는『효.예절.도덕성을 길러주는 교육만이 병든 우리사회를 치유할 수 있다』며 효를 다시한번 더 강조했다.
〈姜甲生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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