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 지브란과 견유 예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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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호 37면

‘거룩한 산’ 헤르몬을 바라보다. 2814m. 만년설로 뒤덮인 이 산은 요단강의 시원을 이룬다. 장엄한 헤르몬산은 이스라엘 정복의 북쪽 경계였다(신 3:8). 안티 레바논 산맥의 꼭대기로 동북, 서남으로 30㎞ 뻗어있다. 시돈 사람들은 이 헤르몬산을 시룐이라 불렀고, 아모리 사람들은 스닐이라 불렀다(신 3:9). 이 산은 가나안의 신 바알(Baal), 희랍신 판(Pan)과도 관련 있다. 많은 사람이 예수가 변모한 ‘높은 산’(막 9:2)도 헤르몬산이라고 추정한다. [임진권 기자]

사랑은 소유하지도, 소유되어지지도 않는 것.
사랑은 다만 사랑으로 충분할 뿐.
사랑할 때 그대들은 이렇게 말해서는 안 되리라, “신이 나의 마음속에 계시다.”
차라리 이렇게 말하라. “나는 신의 마음속에 있노라.”
서로 사랑하라. 그러나 사랑에 속박되지는 말라.
차라리 사랑하는 그대들 영혼의 기슭 사이에 출렁이는 바다를 놓아두라.
서로 가슴을 주라, 허나 간직하지는 말라.
오직 삶의 수고로움만이 그대들의 가슴을 간직할 수 있나니.
함께 서 있으라, 허나 너무 가까이 서있지 말라. 사원의 기둥들도 서로 떨어져 있거늘.
너는 진실로 자유로우리라.
너의 낮이 근심으로 가득차고, 너의 밤이 욕망과 슬픔으로 범벅이 되는 바로 그때에.
이런 것들이 너를 칭칭 감으나 네 스스로 발가벗고 사슬을 끊고,
이들 위로 솟아오를 그때에 너는 진실로 자유로우리.
너는 네 몸뚱이와 하나가 되었을 때 선하다.
그러나 네가 네 몸뚱이와 하나가 되어있지 않더라도 악한 것은 아니다.
내분(內分)된 집이라 하여 그것은 도둑의 소굴은 아니다. 오직 내분된 집일 뿐.
기도란 게 무엇이뇨? 생명의 하늘 속에 너 스스로를 활짝 펴는 것이 아니고 또 무엇이뇨?
허공 속에 너의 어둠을 쏟아 버리는 것이 너의 안락이라면,
너의 가슴속에 피어오르는 새벽빛을 쏟아버리는 것 또한 너의 기쁨이리라.
죽음의 비밀을 알고 싶어 하느뇨?
삶의 한가운데서 죽음을 찾지 않는다면,
어떻게 그것을 찾아낼 수 있단 말가?
낮에는 멀고 밤에만 뜨는 올빼미는 결코 빛의 신비를 벗길 수 없나니,
그대 진실로 죽음의 혼을 보고자 한다면
생명의 몸을 향해 너의 가슴을 활짝 열라!
삶과 죽음은 한몸, 강과 바다가 하나이듯이.
희망과 욕망의 심연 속에 저 너머 세상의 고요한 깨달음이 조용히 출렁이도다.
알미트라는 말이 없었다. 안개 속으로 배가 사라질 때까지 응시하면서.
그리고 사람들 모두 흩어질 때까지, 그녀는 홀로 방파제 위에 서서,
그녀의 가슴속에 새겨진 그의 말들을 되새겼다.
“잠깐, 바람 위에 일순의 휴식이 오면 또 한 여인이 나를 낳으리라.”

샌들과 속옷, 지팡이도 지니지 말라

함석헌 선생께서 천안의 씨알농장에서 한 손에 호미를 들고 밭이랑에 웅크린 호기심 어린 소년 도올에게 들려주시곤 했던 이 주옥같은 말들. 이 칼릴 지브란(Kahlil Gibran, 1883~1931)의 예언자적 외침을 회상할 때, 우리는 예수의 말같이도, 석가의 말같이도 들리는 이 언어들의 본류를 더듬지 않으면 안 된다. 칼릴 지브란은 우리가 논의하고 있는 두로, 시돈 저 위켠 만년설로 덮여 있는 레바논산 기슭의 아름다운 소읍, 베차리(Bsharri)에서 태어났다. 그야말로 “수로보니게 여인”(막 7:26)의 아들이었던 것이다. 지브란의 엄마는 레바논 마론파 신부의 딸이었다.(마론파 기독교의 신부는 초대교회의 전통에 따라 결혼한다.) 그는 뉴욕에 정착하여 레바논의 동포들과 문학동맹(The Pen League)을 결성하면서 『예언자』의 언어를 쏟아내었지만, 그의 내면적 초월의 자유와 저항의 세계 속에는 페니키아문명의 오랜 전통이 면면히 흐르고 있는 것이다.

지브란의 언어와 도마복음서의 언어 사이에서 어떤 공통된 흐름을 조망하는 우리의 시각 속에는 역사적 예수의 실존을 지배하는 아시아적 사유의 진면목에 대한 직시가 있어야 한다. 헬라적 사유전통이 알렉산더대왕의 동정(東征)을 계기로, 우주론과 인식론에서 인간실존의 제문제를 탐색하는 인생론으로 사유패턴이 근원적으로 전환하는 그 이면에는, 제국문명의 정치적 분위기나 폴리스의 정체성 상실과 구성원의 자아상실의 허탈감을 운운하기 이전에, 아시아적 사유의 서점(西漸)이라는 역사적 사실이 전제되어 있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이 대변하는 고전시대(Hellenic Age)의 치열한 논리적 탐색이, 헬레니즘 시기(Hellenistic Age)로 들어서면서 스토아학파(Stoicism), 에피쿠로스학파(Epicurianism), 견유학파(Cynicism), 회의학파(Skepticism) 등 제사조가 추구하는 인생의 궁극적 행복이나 평정과도 같은 비근한 주제로 자리를 양보하는 문명의 전환, 바로 그 전환을 가능케 한 것이 아시아적 사유였다.

헤르몬산 기슭의 드루즈족 주민. 샌들과 지팡이가 인상적이다.

인도 마우리아왕조의 전륜성왕이라 불리는 아쇼카왕(King Ashoka, BC 265~238, 혹은 BC 273~232 재위)이 서방세계에 대규모의 불교 포교단을 파견한 사실도 전설로서만 치부해 버릴 수는 없다. 다르마(Dharma, 佛法)에 의한 덕치주의를 표방한 아쇼카왕은 스리랑카와 미얀마, 시리아, 이집트, 마케도니아, 그리스, 북아프리카 등 유라시아와 아프리카의 세 대륙에 불교 포교단을 공식 파견하여 불교를 세계종교로 격상시켰던 것이다(정수일, 『고대문명교류사』, p.468).

서양철학사에서 알렉산더대왕 이전의 고대 우주론과 인식론에는 비중을 크게 두는 반면, 헬레니즘 시대의 인생철학적 신사조를 소략하게 다루는 경향성의 배면에는 아시아적 사유에 대한 편견이 자리 잡고 있을 수도 있다. 헬레니즘 시대의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추구한 것은 지식이 아닌 지혜였고, 우주의 원질에 대한 통찰이기보다는 인생의 아타락시아(ataraxia)의 체득이었다. ‘아타락시아’란 과도한 쾌락이나 고통 그 어느 것에 의하여도 흔들리지 않는 마음의 평정이었다. 그것은 바로 인간의 욕망으로부터의 해탈(解脫, moksa)이었다.

이 해탈을 가장 철저하게 구현하려고 하였던 사람들이 견유학파였다. ‘견유(犬儒)’란 문자 그대로 ‘개처럼 사는 지식인’이라는 뜻이다. 영어로 ‘시닉(cynic)’이라고 부르는 것도 개를 뜻하는 희랍어 ‘퀴온’에서 유래된 것이다. 그들은 모든 전통과 문명을 거부했다. 기존의 종교와 도덕, 의복, 주거, 음식, 일상예절을 거부했던 것이다. 그들의 삶의 수단은 ‘걸식(begging)’이었고 끊임없는 무소유의 방랑이었다.

알렉산더대왕은 절구통 속에서만 생활하던 견유학파의 대가 디오게네스(Diogenes of Sinope, BC 412~323)를 방문했다. 알렉산더는 절구통 속의 그를 바라보며 말한다: “여기까지 당신을 찾아왔으니 내가 당신을 위하여 해줄 수 있는 일이 무엇이오?” 이에 디오게네스는 대답한다: “햇빛을 가리지 마시오.”(Please stand out of my light.) 이것은 권력에 대한 용감한 도전이나 무시만을 과시하는 사건은 아니다. 알렉산더대왕이 추구하는 거대한 제국건설의 영욕과 무관하게 햇빛만 있어도 평온하게 살 수 있다는 디오게네스의 항변은 기존의 모든 문명적 가치에 대한 사유의 전도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자연으로 돌아갈 것을 인간에게 요구하면서 동시에 “나는 현존하는 모든 가치를 재주조한다.(I recoin current values.)”고 외쳤던 것이다. 그는 천상에서 불을 훔쳐와 인간세를 인위화시키고 복잡하게 만든 프로메테우스를 저주했다. 니체가 주장하는 가치의 전도는 디오게네스의 현대적 표현에 불과할 수도 있다.

그러나 예수야말로 디오게네스의 제자였다는 역사적 아이러니 또한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예수는 견유학파적 리얼리즘을 철저히 실천한 사람이었다. 예수는 그의 운동에 가담하는 제자들에게 돈을 담은 전대는 물론 지팡이나 가죽샌들도, 그리고 속옷조차도 지니지 못하게 했다(마 10:9~10, 눅 9:3, 10:4). 지나치는 사람들과 문안인사조차 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견유학파의 덕목은 최소한의 질박한 삶(simplicity)이었고, 모든 세속적 가치에 대한 절제(self-control)였다. 역사적 예수를 가장 잘 조명한 신학자 크로상(John Dominic Crossan)은 예수를 다음과 같이 명료하게 규정한다: “역사적 예수는 갈릴리의 견유(cynic)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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