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 상품으로 본 체감 물가 외환위기 이후 10년 만에 일제히 껑충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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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호 02면

주부 김연주(36·서울 망원동)씨는 지난달부터 집 앞 수퍼마켓에 가지 않는다. 대신 근처 재래시장을 이용한다. 아들(9)과 딸(7)에게 일주일에 한두 차례 사주던 과자도 집에서 직접 만들어 먹이고 있다. 학습지도 끊었다. 대신 서점에서 문제집을 사다가 직접 아이들을 가르친다. 김씨는 “식료품 가격이 너무 올라 한 달에 70만원으로 정해 놓은 식비를 자꾸 초과한다”며 “올 들어 학원비며 학습지 가격도 일제히 올라 월급으로 감당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야쿠르트·새우깡·신라면…. 한국의 대표적 장수 상품들이다. 이들 제품은 올 들어 일제히 값이 올랐다. 야쿠르트 가격은 지난달 4년 만에 130원에서 150원으로 올랐다. 신라면 가격은 2004년 600원에서 지난해 650원으로 오르더니 올해는 750원이 됐다.
새우깡도 2004년 600원에서 지난해 700원, 올해 800원으로 뛰었다. 신라면과 새우깡은 2년 연속 값이 오른 것이다.

초코파이의 경우 올해는 안 올랐지만 지난해 이미 두 차례 인상됐다. 1998년 이후 200원을 유지했던 초코파이(낱개 환산 가격)는 9년 만인 지난해 1월 233원으로 오른 데 이어 12월 다시 250원으로 올랐다.

물가지표로도 활용되는 장수 상품의 가격이 한 해에 두 번이나 오른 것은 사상 유례 없는 일이다.

가나초콜렛도 이달 중 값을 올릴 예정이다. 97년 200원에서 300원으로 인상된 지 11년 만에 500원으로 오르는 것이다. 무려 66%의 인상폭이다. 대표적 서민 주류인 진로소주(참이슬) 값(출고가)도 지난해 800원에서 839원으로 올랐다.

롯데제과 관계자는 “다른 제품은 신제품을 새로 내놓거나 용량을 조절하는 식으로 가격을 올리지만 장수 제품은 그럴 수 없기 때문에 가장 늦게 값을 올린다”며 “주목도가 높은 장수 상품 가격을 올리는 것은 부담이 크지만 원자재 가격 급등으로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78년 이후 30년간 소비자물가와 장수 상품 가격의 상승률을 비교한 결과 야쿠르트를 제외한 대부분 장수 상품의 가격 상승률이 물가 상승률을 웃돈 것으로 나타났다. <그래프 참조>

체감물가가 정부 발표보다 항상 더 심각하게 느껴지는 이유를 설명해 주는 대목이다. 특히 이 기간 서울 시내버스 요금 상승률은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의 네 배가량 됐다. 서민 주머니 사정을 악화시키는 데 대중교통 요금이 한몫했다는 얘기다.

장수 제품 가격이 일제히 오른 것은 외환위기 당시인 97~98년 이후 10년 만의 일이다. 당시엔 수입물가와 은행금리 상승이 가격 상승의 요인이었다. 이후 10년간 물가는 비교적 안정적으로 유지돼 왔다. 특히 2005~2007년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연 2%대를 유지해 저물가 시대를 구가했다. 하지만 지난해 말 시작된 국제 원자재 가격 폭등으로 물가 불안이 심해지고 있다.

삼양라면 관계자는 “지난해 가격을 올렸지만 올해 한 번 더 올리는 것을 검토 중”이라며 “원자재 가격 상승을 반영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가격 상승세는 외환위기 직후보다 더 가파를 전망이다. 한 식품업체 관계자는 “원자재 가격이 오를 때마다 제품 가격을 올릴 수는 없는 노릇이어서 앞으로 가격 상승분까지 감안해 가격을 올려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정부로서도 최근 물가 상승을 억제할 묘수가 없는 상황이다. 97년 이후 민간 제품의 가격 통제를 하지 않기로 한 데다 버스·지하철 등 공공요금은 지방자체단체에 일임했기 때문이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기업·지자체·소비자 등 경제 주체들이 고통을
분담할 수밖에 없다”며 “정부는 담합이나 매점매석을 단속하고 유통구조를 개선하는 데 주력할 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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