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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욕과 증오로 세운 나라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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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호 16면

데어 윌 비 블러드
감독 폴 토머스 앤더슨
주연 대니얼 데이 루이스, 폴 다노
러닝타임 150분
개봉 예정 3월 6일

국가란 도대체 어떻게 탄생했을까? 미국의 건국 기원에 대한 영화적 비유는 할리우드의 오랜 테마다. 미국영화의 선구자인 그리피스가 ‘국가의 탄생’(1914)을 발표한 뒤 할리우드는 늘 미국의 기원에 대해 물어왔다. 장르 영화들, 특히 갱스터와 웨스턴에는 이런 알레고리 영화가 많다.

돈(갱스터)과 땅(웨스턴)을 위해 목숨을 건 폭력의 이야기는 건국신화에 대한 세속적인 해석과 다름없다. 저 멀리 제임스 딘이 열연했던 ‘자이언트’(1956)부터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차이나타운’(1974), 최근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갱스 오브 뉴욕’(2002), 그리고 올해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은 코엔 형제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2007)까지 건국신화와 국가의 초상을 알레고리처럼 이용한 영화는 끊임없이 발표됐다.

폴 토머스 앤더슨의 ‘데어 윌 비 블러드’(2007)도 미국 자본주의의 탐구에 대한 거대한 서사이자 현대 미국사회에 대한 비판적 알레고리다. 극적 요소는 ‘기름과 종교’다. 이러니 ‘9·11’ 이후의 미국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19세기 말, 미국 서부의 황량한 사막. 금광장이 대니얼 플레인뷰(대니얼 데이 루이스)가 캄캄한 지하에서 열심히 땅을 파는 것으로 영화는 시작한다.

순간 다리가 부러져 그는 죽을 위기에 빠졌지만, 불굴의 의지로 굴을 빠져나온다. 심지어 그는 등으로 기어 관련 사무소에 도착해 기어이 채굴권을 따내는 독기까지 보인다. 오직 돈을 벌기 위해 눈에 핏발이 선 그가 드디어 기름을 발견하는 것으로 영화는 급변을 맞이한다. 그는 자본권력의 상징이다.

대니얼에게 대항하는 인물이 엘라이(폴 다노)다. 대니얼의 기름을 이용하여 돈을 빼낸 뒤 자기만의 왕국인 교회를 세우는 게 그의 목표다. 성직자라고 하기엔 너무 주술적인, 마귀와 같은 인물이다. 사막과 다름없는 이곳의 문맹자 주민을 대상으로, 종교적 공포심을 이용하여 초월적 권력을 쌓고 있는 중이다.

그에게 절실한 것은 권력을 더욱 공고히 할 수 있는 돈이다. 대니얼이 신앙의 왕국 아래 무릎 꿇고 돈을 갖다 바치면 그의 꿈은 완성될 것이다. 엘라이는 종교권력의 상징이다. 영화는 이 두 권력, 곧 자본주의와 기독교가 벌이는 증오의 경쟁이 될 것이다.

업턴 싱클레어의 원작을 각색한 ‘데어 윌 비 블러드’의 시각은 지극히 비관적이다. 전통적인 장르영화에서 볼 수 있는 선인의 역할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오직 악인들만이 활개 친다. 이에 희생되는 대상은 순진한 주민들이다. 대니얼은 기름 채취권을 따기 위해 주민들을 설득하고 협박한다.

“땅을 빌려주면 공동체 전체가 발전할 것이고, 모두 부자가 됩니다.” 평생 못 배우고 굶다시피 살아온 주민들은 정치가 뺨치는 그의 현란한 거짓말에 순진하게 넘어간다. 눈 뜨고 자기 재산을 빼앗긴 주민들은 곧 이어 교회를 건설하자는 성직자에게 남은 재산마저 다 내놓을 판이다.

이런 폭력적인 세상의 가장 극적인 희생자는 대니얼의 어린 아들이다. 사실 그는 친아들이 아니다. 대니얼이 자신의 사업을 위해 주워 키운 뒤 마치 친아들처럼 데리고 다니는 것이다. 주민들을 설득할 때 이 아들은 선한 표정을 짓고 옆에 서 있기만 하면 된다. 그러니 아들은 선전의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드디어 기름이 발견된 날 ‘검은 황금’이 폭발음을 내며 공중으로 치솟아 오를 때 아이는 소리 때문에 그만 청각을 잃고 만다. 더 이상 선전의 역할을 할 수 없게 되자 아이는 매정하게 기숙학교로 보내진다.

자본주의의 상징 대니얼은 주체할 수 없는 돈을 모은 뒤 알코올 중독의 고립 속에 살며 여전히 다친 다리를 절고 있다. 그는 괴물처럼 변해 간다. 기독교의 상징 엘라이는 지금도 이 절름발이 거부를 찾아와 돈을 달라고 비굴하게 구걸한다. 버려진 아이는 아버지의 존재를 부정하고, 아버지를 증오하는 ‘아비 없는 자식’으로 성장할 것이다. ‘9·11’ 이후 미국의 모습, 더 나아가 우리 모두의 모습을 통렬한 시각으로 비판하는, 강렬한 알레고리의 수작이 또 한 편 나온 것이다.

폴 토머스 앤더슨은 장편 데뷔작인 ‘리노의 도박사’(1996)부터 뫼비우스의 띠처럼 복잡하게 구성된 파편적인 드라마 작법과 미국사회를 꼬집는 통찰력 있는 풍자로 그 재능을 인정받았다. ‘부기 나이트’(1997), ‘매그놀리아’(1999)는 그 절정이고, 로맨틱 코미디 형식의 ‘펀치 드렁크 러브’(2002)까지 감독 특유의 드라마 구성은 유지됐다. 그런데 이번에는 약간 바뀌었다. 50년대 대작 영화를 보는 듯한 서사극을 내놓았다. 약간 쉬워졌고, 대신 그의 개성이 좀 희석됐다.

대니얼 데이 루이스의 연기는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으로 보상받았고, 성직자 역을 맡은 폴 다노의 연기도 인상적이다. 그는 ‘미스 리틀 선샤인’(2006)에서 10대 반항아로 나왔는데, 여기선 광적인 성직자로 급변했다. 기름이 터져 나올 때의 폭발적인 장면 구성은 이 영화의 압도적인 순간으로 기록될 것이다. 촬영감독 로버트 엘스위트는 아카데미 촬영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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