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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르포 4신·끝] “코소보 독립 후 앞날 빵 문제 해결에 달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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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코소보 수도 프리슈티나에 사는 이슬림 베구(30)는 지난해부터 시내 호텔의 운전 기사로 일하고 있다. 월급은 210유로(약 29만4000원). 코소보대 경제학과 출신인 그에게는 어울리지 않아 보이지만 아르바이트로 전전하다 지난해 어렵사리 구한 직장이다. 베구는 “대학을 졸업하고도 일자리가 없어 건설 현장을 돌며 막노동을 하는 친구들이 적지 않다”며 “운전기사 일을 오래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고 말했다. 그나마 이 남자는 나은 편이다. 여행사에서 근무하는 20대 여성 데치는 이보다 훨씬 적은 돈을 받는다. 그는 “직장을 잡는 20∼30대 여자가 열 명에 한 명꼴”이라고 말했다. 독립 코소보의 앞날은 먹고사는 문제에 달려 있다는 게 현지의 시각이다. 국제사회가 독립을 지지해줄 수는 있지만 경제 문제까지 해결해줄 수는 없기 때문이다.

현재 코소보의 공식 실업률은 47%. 일하는 사람 상당수가 임시직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실제론 60%에 가깝다. 실업자의 90% 이상이 1년 이상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다. 코소보 국민은 독립과 함께 당장 나라가 잘살게 될 것이란 기대감에 부풀어 있다.

택시 기사 스마일리(52)는 “그동안 세르비아 정부 때문에 경제가 숨을 못 쉬었지만 이제는 달라질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그러나 막연한 기대감을 당장 채워줄 묘책은 없어 보인다. 현재 코소보에는 6만여 개의 사업체가 있지만 직원이 10명이 채 안 되는 소규모 영세 사업장이 98%다. 나라를 이끌어갈 동력도 태부족이다. 수도 프리슈티나에서 가끔 눈에 띄는 고급 음식점은 부자들이 하는 사업이다. 그나마 지금은 유엔과 평화유지군, 기타 코소보를 드나드는 외국인들이 이용하지만 이들마저 떠나면 손님이 뚝 떨어질 게 뻔하다.

코소보 정부는 가난 해소 방법으로 외국인 투자를 들고 나왔다. 지리적으로 동·서 유럽을 잇는 좋은 위치에 있고, 금광 등 천연자원과 값싼 노동력이 풍부하다는 게 홍보 포인트다. 외국인 투자에 대해선 분야에 따라 다양한 면·감세 혜택을 주기로 했다. 코소보 투자청의 린다 카셀라(여)는 “최근 몇 년 사이 국영기업의 민영화 등 시장 경제 도입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어 외국인 투자가 활발해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코소보는 1990년에도 독립 선언을 했다가 국제사회의 냉담한 반응으로 실패한 쓰라린 경험을 갖고 있다. 당시는 알바니아만 승인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다르다. 미국·영국·프랑스·독일·스위스 등이 잇따라 독립 코소보를 인정했다.

이 때문에 러시아가 “코소보 사태로 유럽 전체가 전쟁에 휘말릴 수 있다”고 경고하지만 크게 신경 쓸 수준은 아니라는 게 현지 분위기다. 코소보 라디오 방송의 한 기자는 “러시아는 국제사회에서 미국 견제와 대선 등을 의식해 정치적 발언을 하고 있지만 현실감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세르비아 기자인 옐레나도 “국제사회의 여론은 독립을 인정하는 쪽으로 기울었다”고 말했다. 유엔은 아직 입장 표명을 유보하고 있지만, 코소보 독립은 대세로 가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지금부터다. 정치적 독립을 했다 해도 경제적 홀로서기를 하지 못하는 한 독립의 의미는 퇴색해 버리기 때문이다. 같은 유교 연방이었던 슬로베니아의 한 일간 신문은 이와 관련해 “슬로베니아식 시장경제 모델을 따르느냐, 세르비아식 폐쇄 구조를 고집하느냐가 코소보의 앞날을 결정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진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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