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 공심위 강 vs 강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4면

‘강(정혜·左) 대 강(혜련·右)’.

요즘 한나라당 내에선 18대 총선 공천심사위원회(위원장 안강민)를 가리켜 이런 말이 나온다. 이화여대 경영학부의 강혜련 교수와 서울시립대 법학과의 강정혜 교수, 두 명의 여성 강 교수가 공심위 논의를 주도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말이다.

강혜련 위원은 한나라당 공심위의 단골 위원. 이번을 포함해 두 번의 총선과 한 번의 재·보궐 선거 등 모두 세 번이나 공심위원을 맡았다. 공심위 경험이 많은 만큼 그의 발언은 회의에서 꽤 큰 영향력을 갖는다고 한다.

강 위원은 특히 미국식 보수주의를 강조해 후보자들을 두려움에 떨게 하고 있다. 아무리 다선 의원이라도, 아무리 대선에서 큰 공을 세웠더라도 부정부패에 연루됐거나 탈당 등의 흠결이 있는 사람은 강 위원의 지적을 피해 나갈 수 없다. 뉴라이트 운동에 참가해 친이명박계로 꼽히지만 계파보다는 원칙을 더 강조한다는 평가다.

친박근혜 성향으로 알려진 변호사 출신 강정혜 위원은 법률가 출신인 만큼 법과 규정의 엄정한 적용을 중시한다.

그래서 공심위 첫 회의 때 ‘형이 확정된 부정비리 연루자의 경우 공천신청 자격이 없다’는 당규 조항에 관한 논의가 벌어지자 “시점과 형량이 불분명하다. 정확한 규정이 필요하다”는 소신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엔 “벌금형이라도 무조건 기회를 주지 말아야 한다”는 분위기가 우세했다고 한다. 강 위원은 “엄격하게 규정을 해석하는 건 좋지만 위헌적이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그래서 두 사람이 의견 대립을 빚을 때면 공심위 회의의 분위기가 가장 뜨거워진다고 한다.

두 강 교수 외 다른 공심위원들도 공천 심사에서 자신들의 특기를 발휘하고 있다. 한국노총 출신 양병민 위원은 노동운동가나 기업가 후보자들에 대해선 꼭 지적하고 넘어가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예선에서 탈락한 한 대기업 사장 출신 신청자의 경우 양 위원이 심사 과정에서 “노조 탄압 경력이 있다”고 지적했다고 한다. 한국매니페스토 실천운동본부 대표를 지낸 김영래(아주대 교수) 위원은 이번 공천심사에서 처음으로 의정활동계획서를 제출 서류에 포함시켜 신청자들의 진땀을 뺐다.

한 위원은 “처음엔 싸우기도 많이 했지만 매일 10시간씩 붙어 있다 보니 이젠 위원들끼리 정이 많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처럼 공심위원들이 뚜렷한 소신을 바탕으로 심사를 진행하다 보니 당 내에선 “어느 계파보다 힘센 곳이 공심위”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이가영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