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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발 만드는 사람들 여기 모여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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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은 만들어 입어도 신발은 사 신어야 한다? 아니다, 옷을 만들어 입는 것처럼 신발 역시 만들어 신을 수 있다. 신발 한 켤레를 만들기 위해서 수 없이 많은 공정이 필요해 그야말로 장인체험을 하는 것과 진배없지만, 그 섬세한 과정 하나하나에 희열을 만끽하는 이들이 있다. 신발 만드는 사람들의 모임 ‘슈클럽 Funny Company’가 그렇다. Walkholic은 클럽 회장 조용현 씨(27세)와 함께 얘기를 나눠보았다.

Walkholic(이하 WH) 먼저 슈클럽 소개를 부탁합니다.
조용현(이하 조)- 말 그대로 신발이 너무 좋아서 직접 디자인도 하고 자체적으로 제작도 하는 사람들이 모여 만든 클럽 겸 동아리에요. 제가 경남정보대학 신발패션산업학과를 졸업했거든요. 아무래도 전공이 그렇다보니까 신발 만드는 일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가 없었죠. 기본적으로는 신발을 너무나 사랑하기도 했고요. 그런데 의외로 저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더라고요. 그래서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모이게 됐죠. 슈즈 디자인(Shoes Design)이 우리 회원들 주특기에요.

WH 신발을 만드는 클럽은 흔치 않은데요, 신발 마니아들의 모임과 어떤 차별점이 있을까요?
조- 아무래도 신발 마니아들은 주로 쇼핑에 중점을 두고 있다고 봐야 하겠죠. 우리 회원들의 활동은 주로 창작에 중점을 두고 있어요. 신발을 구입하거나 신고 다니는 행위를 즐기기 보다는 그냥 무작정 신발이 좋고, 신발 만드는 일이 좋은 거죠. 굳이 내가 신을 신발이 아니더라도 좋은 단상이 떠오르면 꼭 한번 만들어봅니다. 신발을 수집하거나 비싼 신발을 사는 일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아요. 신발을 생각하면 어쩐지 행복해지고, 또 우리가 모르는 신발의 세계에 대해서 하나둘씩 배워가는 과정에서 희열을 느끼는 것이 즐겁습니다. 남들은 어떻게 볼지 모르겠지만, 저희는 신발 하나를 가지고 웃고 울고 즐기고 탐구하며 인생을 배우고 있어요. 자신감이 좀 붙으면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이, 나보다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신발을 만들어서 직접 신겨주고 싶다는 거예요.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많은 회원들이 그 꿈을 이루었지요.

WH 일반인들도 참여할 수 있을까요?
조- 현재 구성원은 20명 정도 되는데요, 아직까지는 대부분 신발 관련 공부를 하는 학생들입니다. 하지만 신발 만들기에 관심이 있다면 남녀노소 구분 없이 누구나 함께할 수 있어요. 저희들 활동을 널리 알리기 위해서 오래전부터 기반을 닦아오고 있으니 조만간 온라인 체계를 구축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WH 클럽 활동은 주로 어떻게 이루어지나요?
조- 회원들 각자가 탐구하는 분야가 달라서 분야별로 제작공정이 이루어집니다. 이를테면 디자인, 패턴, 금형, 자재, 생산 등으로 파트별 분업화가 확실히 구분 돼 있어요. 그렇다 보니 서로 다른 분야끼리 자신의 고집을 더 앞세우다가 의견 충돌이 일어나기도 하죠. 처음에는 이런 것도 좀 힘들었는데 지금은 좋은 경험이라 생각하며 서로 존중하는 방법을 터득해 나가고 있습니다. 무조건 잘 하려고만 했을 때는 마음이 조급하고 신경이 예민했는데, 실패를 거듭하는 것이 다른 어떤 것보다 가장 큰 공부가 되고 있다는 걸 깨달은 후로는 좀 더 성숙한 분위기죠. 분업화가 돼 있다고 해도, 초기에는 공정 전반을 알아야 하기 때문에 공정 전체를 함께 합니다. 아이디어 회의를 할 때 마다 다 함께 모여서 머리를 맞대는데, 2주 간격으로 아이디어 회의를 하고 있어요. 각자가 내놓은 아이디어를 통해서 회의 후 다음 작업이 이루어지죠. 기발한 아이디어가 많이 나오고 있어요. ‘이만기종아리신발’, ‘낙엽신발’, ‘건전지충전신발’, ‘네비게이션 신발’, ‘정력증진신발’등 재미있는 소재와 아이디어가 무궁무진 하죠. ‘정력증진신발’은 신발을 신은 후 정력증진 향상에 대한 효과를 실험할 학생이 없어서 회의에서 제외됐던 해프닝이 있네요. 디자인 회의가 끝나면 선정 제작에 들어갑니다. 잔뜩 부푼 마음으로 만들었는데도 정말 말도 안 되는 엉터리 작품이 종종 나오곤 해요. 그런데 고생을 많이 해서인지 그런 신발일수록 더욱 애착이 가던데요. (웃음) 더 신선한 영감을 얻기 위해 저희는 여행을 즐깁니다. 우리가 만든 신발을 신고 국내외 곳곳을 돌아다니는 것만큼 재밌는 게 또 있을까요?

WH 클럽활동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경험은 무엇인지요?
조- 저로서는 모든 순간이 다 인상적이었어요. 공모전에서 매번 낙방했던 한 후배와 수많은 밤을 지새워가며 칠전팔기를 꿈꾸었는데, 그 과정이 너무 힘들어서 몇 번이고 포기하려 했던 순간들이 기억나네요. 하지만 결국 끝까지 해냈답니다. 비록 입상하지는 못했지만 그 친구도 저도 상보다 더 중요한 무언가를 얻었거든요.
또 하나의 인상적인 기억으로는, 좋아하는 사람에게 제가 직접 신발을 만들어서 신겨 주었던 것이에요. 몇날 며칠 그 사람이 좋아하는 색상과 디자인을 고민해서 한여름 내내 땀 흘려 만들었는데 막상 만들어놓고 보니 좀 작더군요. 발이 아팠을 텐데 꾹 참고 신어주었던 그 사람에게 참으로 고마운 마음을 느꼈습니다.

WH 활동 중 힘들었거나 아쉬운 부분이 있었을 것 같은데요?
조- 별로 대단해 보이지 않는 신발인데도 제대로 된 신발 한족을 만드는 데 300가지가 넘는 공정이 이루어진다는 점을 생각해보세요. 공력이 정말 많이 들어가서 힘들었어요. 하지만 그보다 더 힘들었던 것은 내가 만든 작품이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을 때지요. 이런 과정을 겪다보면 ‘긍정적인 오기’가 생긴다고나 할까요?(웃음) 더 다양한 신발을 제작해야겠다는 욕심이 생깁니다. 머잖아 세계 신발 시장 속에서 우뚝 서 있을 우리들 모습을 상상하면서 말이에요.

WH 청년 실업시대, 졸업이 곧 재앙이라는 블랙유머까지 나도는 현실입니다. 향후 활동방향은 정해졌나요?
조- 며칠 전 학사모를 쓸 때, 처음 신발을 만들었던 순간이 떠올라 찡했어요. (웃음) 신발 만들기에 미쳐있는 동안 나도 모르게 엄청난 실습과 이론 공부를 했더라고요. 이제는 여기에서 좀 더 욕심을 내어 ‘Shoes Brand MD’ 공부를 할 생각입니다. 신발에 관한 최대한 많은 공부를 하고 싶거든요. 당장 취업을 하는 것보다 정말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좁은 길이라도 꾸준히 걸어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봐요. 졸업생들 모두 앞날에 대한 두려움에 전전긍긍하지 말고 자신이 어떤 일을 해야 행복할 것인지 고민했으면 좋겠네요. 우리 클럽 회원들이 신발 만들기를 통해서 삶을 배워가고 있는 것처럼 말이죠.

객원기자 설은영 skrn77@join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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