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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민호 기자의 문학터치 <129> 무협지와 무협소설 사이에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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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이진원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가 『한국무협소설사』(채륜·사진)를 펴냈다. 오로지 취미로 시작한 일이 여기까지 이르렀다고 지은이는 서문에서 말했다. 온갖 자료 샅샅이 톺아 책 한 권 번듯이 엮은 정성이 귀하다. 더욱이 이 땅에서 무협지(武俠誌)는, 음지문화의 온상처럼 여겨진 지 오래다. 하여 무협소설의 역사를 정리한 건, 일종의 문화운동 차원 일이다. 기꺼운 마음으로 영웅 호걸의 계보를 따라 읽다 오만 가지 상념에 젖고 말았다. 무협지와 무협소설 사이에서 길을 잃은 건, 비단 문학터치만의 감상은 아닐 터이다.

# 영웅문 키드

이 땅에서 남성 독서의 8할은 무협지에서 시작되었다. 50대 이상에 『정협지』의 전설이 있다면, 30∼40대엔 『영웅문』의 추억이 있다. 특히 『소설 영웅문』(1986)의 등장은, 무협지에 관한 통념을 깨뜨린 일대 사건이었다. 『영웅문』은 무협지스럽지 않았다. 디자인은 세련됐고, 종이는 고급스러웠다. TV에서 선전도 나왔다. 말하자면 『영웅문』은, 거실 책장에 꽂힌 최초의 무협지였다. 하나 그 『영웅문』도 정식 수입품은 아니었다. 진융(金庸)의 ‘사조삼부곡’ 전작이 온전히 수입된 건 겨우 지난해 일이었다.

이른바 본격문학도 무협지의 자양분을 받아먹었다. 대표적인 작가가 성석제다. 그는 무협지에서 상상력의 경지를 터득했다고 수시로 떠들었다. 그러고 보니 허무맹랑하게 이어지는 성석제의 입심은, 무협지의 점층적 과장법과 닮은 구석이 있다. 점층적 과장법? 거, 있잖은가. 천하 무공이 강호를 호령하면, 그보다 센 무공이 홀연히 나타나 강호를 접수하고, 그러면 더 강력한 무공이 표표히 걸어 나오는, 밑도 끝도 없는 서사구조 말이다. 의외로 김훈도 무협지와 인연이 도탑다. 『정협지』의 고(故) 김광주가 김훈의 선친이다. 김훈은 이미 여러 번 선친의 일화를 밝힌 바 있다. “기력 쇠한 아버지가 불러주는 대로 받아 적은 글이 당장은 우리 가족의 쌀이 됐고, 훗날 내 문장의 시초가 됐다.”

# 무협지 그리고 무협소설

진융의 무협소설이 대만과 홍콩을 휩쓸던 1960∼70년대. 중국 공산당은 진융의 대륙 진출을 차단했다. 그러나 80년대 들어 중국은 입장을 싹 바꿨다. 90년대 중반까지 진융 소설은 대륙에서 약 2억 부가 팔렸다. 학술적 검토도 활발히 이뤄졌다. 진융을 20세기 중국작가 중에서 네 번째로 주목한 연구가 발표됐고, 베이징대학에 ‘진융 소설 연구’ 과목이 개설됐다. 급기야 진융은 베이징대 명예교수 직함을 얻었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중국의 진융 바람엔 정치적 꿍꿍이가 있다. 반만 년 전통을 강조함으로써 중국은 서구 제국주의 문화에 맞서는 참이다.

반면 한국의 무협시장은 아사 직전이다. 한국 무협소설의 유일한 활로는 도서대여점인데, 최근 도서대여점 숫자가 급감하는 추세다. 2000년 2만∼3만 개를 헤아리던 곳이 현재 5000개를 못 채운다. 한국에서 도서대여점 숫자는 무협소설 발행부수와 대체로 일치한다. 요즘엔 불법복제 문제까지 터졌다. 신작 출간 사나흘 뒤면 인터넷에 전문이 떠도는 형편이다. 한국형 무협소설 1세대를 대표하는 작가 금강은 “아예 굶어 죽을 판”이라고 한탄한다.

‘먼치킨(Munchkin)’이란 말이 있다. 판타지 고전 『오즈의 마법사』의 등장인물로 ‘뭐든 다 잘하는 난쟁이’의 이름이다. 이 ‘먼치킨’이 요즘 온라인 게임 용어로 종종 쓰인다. 무소불위의 캐릭터를 뜻한단다. 무소불위라면, 무림 지존의 경지다. 컴퓨터 게임의 스토리 라인도 그러고 보니 무협소설의 서사구조에 빚진 바 크다. 하나 다 부질없다. 한국에서 무협지는 다만 무협지일 따름이다.

손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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