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 미테랑 장기집권 14년-위기를 기회로 정치력 탁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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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프랑스 최초의 좌파 대통령으로 2期,14년간 집권해온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78)이 다음달 7일 선출될 후임자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20일 퇴임한다.프랑스대혁명 이후 미테랑만큼 오래집권한 인물은 없다.
그러나 그의 14년은 사회주의 정책의 「좌절」로 요약될 수밖에 없다.81년5월 그의 당선은 변화를 원하는 사회적 분위기 때문이었다.우파에 식상한 프랑스 유권자들은 좌파세력을 결집해 거대한 변화를 끌어낼 수 있다는 환상에 매달렸다.
그에게 사회주의는 처음부터 집권을 위한 도구에 불과했다.국유화.노동자보호.복지확충등 장미빛 공약들은 재정적자.인플레.프랑貨 가치하락등의 현실적 문제에 부닥치면서 퇴색하기 시작했다.집권한지 채 2년도 안돼 그는 긴축정책으로의 전환을 공식선언했다. 대신 그가 새로운 기치로 내세운 것은 유럽통합이었다.유럽통합을 가속화하기 위해서는 경제균형과 프랑貨 가치유지가 필수적이라는 논리를 폈고,그 이후 헬무트 콜 독일 총리와 짝을 이루어유럽통합을 주도해왔다.유럽통합주의자로 변신한 이후 그의 정책은고용보다는 경쟁력,소득보다는 이윤을 앞세우는 우파정책의 재판(再版)이었다.집권 3년만에 실업자는 2백50만명을 넘어섰고,이후에도 실업자는 계속 늘어 집권기간 내내 최대의 실정(失政)으로 그의 발목을 잡아 왔다.
86년 사회당의 총선패배는 당연한 귀결이었다.그러나 위기를 기회로 살리는 미테랑의 타고난 정치술수는 또 다시 위력을 발휘한다.정적인 자크 사라크 파리시장을 총리로 앉혀 좌.우파가 대통령과 내각수반을 나누어 맡는 초유의 코아비타시옹 (동거)정부를 탄생시켰다.사사건건 시비를 걸고 나오는 시라크 총리 뒤에서국정의 큰 줄기만 보살피는 「통통」(아저씨)으로서의 초연한 이미지를 부각시켰다.인기는 올라갔고,88년 再당선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재집권이후 미테랑 의 정책은 뚜렷한 성격을 갖지 못했다.93년 총선 패배에 이어 사회당과 관련된 각종 스캔들이 잇따라 터지고,프랑스역사의 수치로 여겨지는 나치치하 비시정권과의개인적 관계가 드러난데다 전립선암까지 겹쳐 미테 랑의 집권말기는 더없이 우울한 모습을 보여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인기는 30~40%선을 꾸준히 유지해왔다.지난 2월 실시된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프랑스 국민의 54%가 그의 재집권은 바람직하지 못했다고 말하면서도,67%는 미테랑의 집권기간을 프랑스 역사의 중요한 부분으 로 평가하고 있다. 〈裵明福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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