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새 선장 이명박 대통령을 맞이하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0면

한국의 현대사에서 대통령은 큰 획을 그어 왔다. 1988년 국민은 약 20년 만에 다시 자기 손으로 뽑은 대통령을 취임식장에 올렸다. 반만년 한반도 역사에서 처음으로 진정한 민주주의가 시작된 것이다. 10년 뒤인 98년 한국인은 김대중 대통령으로 과감하게 세상을 바꿨다. 48년 정부 수립 이래 처음으로 정권이 여당에서 야당으로 평화적으로 넘어갔다. 처음으로 동(영남)에서 서(호남)로 권력이 이동했다. 다시 10년 뒤인 2008년 한국은 한 번 더 역사의 전환을 맞고 있다. 과거와 싸우느라 미래에 소홀했던 시대를 마감하고, 선진화에 도전하는 새 시대를 시작하고 있다. 10년마다 찾아오는 역사의 요동(搖動)은 한국을 어디로 끌고 갈 것인가. 승객은 희망과 불안이 섞인 눈으로 선장 이명박을 바라보고 있다.

선진국이란 항구는 멀리 떨어져 있다. 파도는 높고 바다는 깊고 퍼렇다. 중국은 패권주의와 기술·노동·자본력으로 압박하고, 러시아는 아직 손길이 무덤덤하며, 미국·일본과는 손을 다시 잡아야 한다. 북한은 불투명한 핵무기와 빈사(瀕死)의 경제로 한국의 무거운 짐이 되어 있다. 글로벌 경쟁은 날로 격해지는데 한국호는 세계 경제의 파도에 약하다. 선장은 대선 때 747을 외쳤다. 7% 성장, 국민소득 4만 달러, 7대 경제 강국이다. 그러나 세계 경제에 격랑이 일면서 한 달도 못돼 647로 바꿨다. 언제 538, 439로 바뀔지 모른다. 그래서 선장의 어깨를 보는 시선이 따스하지만은 않은 것이다.

배 안의 사정도 편하지 않다. 1등실은 불안하고 2등실은 갑갑하며 3등실은 힘들다. 좋은 얘기도 들린다. 대기업은 투자와 고용을 늘린다고 한다. 나라가 공교육을 강화한다고도 한다. 그러나 눈앞에 뭔가 보이려면 시간이 많이 걸린다. 전봇대 몇 개 뽑혔다고 규제가 풀릴지, 취업 사정은 좀 나아질지, 교육을 자율화하면 사교육비가 줄어드는 건지, 영어에 몰입해야 한다는 얘기는 또 뭔지, 내 집 마련은 가까워지는 건지, 비정규직은 언제나 사는 게 좀 나아질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은 되긴 되는 건지, 대운하는 정말 좋은 건지 승객들은 알 수가 없다. 배는 고동소리를 내며 선진화를 향해 출발하지만 사방이 안개다.

한국의 새 선장은 노련한 항해사다. 그는 작은 배(현대건설)로 멋지게 바다를 헤쳤고 중간 배(서울시)도 잘 몰았다. 승객 48.6%가 그 항해 솜씨에 반해 그를 선장으로 뽑았다. 나머지 승객도 그의 항해술만을 믿고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호는 톤수가 다르다. 소형이나 중간을 다루던 솜씨가 통한다고 장담할 수 없다. 승객은 새 선장이 두 달간 시험운행하는 것을 보았다. 선장은 팔을 걷어붙이고 잠자는 시간도 줄여 가며 열심히 항해를 지휘했다. 그러나 역시 큰 배는 달랐다. 열심히 한다고, 서두른다고 배가 순항하는 건 아니다. 조타실에서 나와 갑판의 승객을 설득하고 다독이는 것도 중요하다. 인수위는 의욕적인 만큼 과욕도 적잖았다. 당선인은 돌파를 위한 자기 확신이 너무 강했다. 그는 항해사·기관사들을 자랑스럽게 내놓았다. 그러고는 국회 인사청문 절차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내정자들을 마치 장관처럼 다루었다. 지금 일부의 도덕적 하자나 사회적 의무감 부분을 놓고 논란이 분분하다. 선장도 결점이 많은 사람이긴 하다. 하지만 승객이 그를 뽑았다고 해서 그의 항해사·기관사들을 무조건 인정해 주는 것은 아니다. 승객은 냉정하고 꼼꼼한 눈으로 지켜볼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인생은 한 편의 감동적인 성공 드라마다. 깊은 계곡과 거친 능선도 있지만, 멋진 봉우리와 시원한 계곡물이 많아 국민이 즐거이 그 산을 오른 것이다. 인생이나 사회나 국가엔 다 명암이 있다. 진보정권 10년에 한국 사회는 많이 갈라져 있다. 이 대통령은 실용이란 바늘과 성심(誠心)이란 실로 그 분열을 꿰매야 할 것이다. 대통령이 과속하지 않고, 국회와 건전한 여론을 존중하며, 반듯하고 효율적인 인재를 널리 쓰면 한국호의 항해는 성공할 것이다. 이명박의 성공 스토리는 한국인 모두의 성공 스토리가 될 것이다. 5년 뒤 ‘이 대통령을 역사 속으로 보내며’라는 사설에 성공이란 단어가 자랑스럽게 등장하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