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와 김정일도 덮는다는 바로 그 이불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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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호 39면

나이 먹으면서 제 마누라가 더 예뻐 보인다면 지난 삶을 잘 산 방증이다. 오랜 부부는 서로 존재의 무게를 키워온 시간이 억울해서라도 잘 살아야 한다. 이젠 마누라로부터 쫓겨나지 않기 위해 온갖 아양을 떨며 사는 처지가 됐다. 이혼당하면 갈 곳이 없는 탓이다.

윤광준의 생활명품 이야기-美 코지 다운

마누라 자랑은 멋쩍다. 하지만 결혼 이래 깨끗한 침구와 편한 잠자리를 만들어준 예쁜 짓은 그냥 넘어갈 수 없다. 난 매일 특급호텔의 베일 듯한 흰 침대 시트에 포근한 이불을 덮고 잔다. 정결하고 안락해야 하는 잠자리만은 호사를 누리며 살아야 한다는 마누라 지론의 혜택이다.

언제부터인가 유난히 감촉 좋고 가벼운 이불이 침대 위에 놓이기 시작했다. 풍성한 볼륨에도 무게를 느낄 수 없고 따스한 보온력은 쾌적한 수면 상태를 밤새 유지한다. 겨울엔 따뜻하고 여름엔 시원한 이불. 한여름에도 두꺼운 이불을 덮어야 잠드는 나의 특이한 잠버릇에도 제격인 다운 제품이다.

새 이불을 하나 더 사기로 했다. 선택은 당연히 다운이다. 이 동네 최고의 물건은 미국의 코지 다운(cozy dawn)이었다. 백악관의 부시 대통령과 북한의 김정일도 사용한다는 코지 다운의 명성은 편안한 잠자리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다.

한때 유행했던 다운 이불의 퇴조는 질 낮은 제품이 만들어낸 부정적인 이미지 때문이다. 제대로 처리되지 않은 다운이 풍기는 고약한 냄새와 바느질 솔기로 삐져나오는 깃털의 따가운 감촉을 기억할 것이다. 코지 다운은 뭔가 달랐다.

엄선된 재료의 선택과 복잡한 처리과정을 거친 다운 이불은 악취 대신 향기가 풍기고 피부의 일부인 양 몸에 감겼다.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최고 이불 충전재의 진가는 사용시간을 통해 저절로 파악되었다.

북극권 아이슬란드의 해안가에 서식하는 물오리는 번식을 위해 자신의 앞가슴 털을 뽑아 둥지를 만든다. 번식기 이후 빈 둥지에 남은 털을 회수해 모은 아이더(eider)가 지존의 다운이다. 한 채의 이불에 필요한 물오리는 아마 수천 마리도 더 될 것이다. 희귀성과 높은 가격은 어쩌면 당연할지 모른다. 아이더로 만든 코지 다운 이불의 무게는 500g을 넘지 않지만 가격은 2000만원이 넘는다.

북유럽 귀족들이 아니면 쓰지 못했던 다운 이불은 좋은 시절 덕분에 내 집에까지 놓여있다. 아이더는 꿈도 꾸지 못하고 아래 등급의 코지 다운이 우리 차지다. 우리 부부 존재의 무게는 바로 이 가벼운 다운 이불 밑에서 키워졌다. 가장 편안한 휴식을 통해 힘든 오늘과 맞서는 방법이다. 이불 한 채의 호사가 미래를 위한 투자라면 아낄 이유는 없다.


윤광준씨는 사진가이자 오디오평론가로 활동하면서 체험과 취향에 관한 지식을 새로운 스타일의 예술 에세이로 바꿔 이름난 명품 매니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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