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정부 시스템 나사 풀렸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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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또다시 놀란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대한민국 행정의 심장부인 서울 세종로 정부 중앙청사가 불에 그슬렸다. 국보 1호 숭례문이 불탄 지 열흘 남짓 만이다. 국무조정실 일부 사무실에 있던 정부 중요 문서가 훼손되고 청사 업무가 일시 마비됐다. 이 정부가 어쩌다 이 지경인지 국민은 불안하기만 하다.

노무현 정권은 5년 동안 정부 시스템을 강조했다. 그러나 숭례문 소실에 이은 국가 중요 시설 화재를 지켜본 국민 눈엔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되는 정부로 비춰질 리 만무하다. 이번 청사 화재만 해도 그렇다. 국가 재난·재해 예방의 책임을 지고 있는 행정자치부와 소방방재청이 들어있는 정부 청사에 불이 났다는 걸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스프링클러도 없는 청사의 화재 무방비 상태는 정도가 심해도 너무 심했다. 예산을 들먹이며 정작 청사의 기본적인 방재 시스템조차 갖추지 않은 것이다. 더욱이 9년 전 바로 아래층에서 비슷한 화재가 있었는 데도 달라진 게 없는 정부의 무신경엔 어처구니가 없다.

이번 화재는 정권 교체기를 틈탄 공무원의 기강 해이와도 무관치 않다고 본다. 정부조직 개편과 인력 감축 분위기 속에서 일손을 놓고 있는 공무원이 한둘이 아니다. 이러니 청사에 화재 위험이 도사리고 있어도 눈에 들어올 리 있겠는가. 이번 화재는 단순사고로 치부할 일이 아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혀만 차고 있을 일도 아니다. 이번 불은 공무원들이 정신을 똑바로 차리라는 ‘계시’라고 본다. 나사가 풀어질 대로 풀어진 공무원 자세를 다잡는 계기가 돼야 하는 이유다.

이명박 당선인은 장관후보들과의 워크숍에서 공직 사회의 비효율을 지적하며 정부 시스템을 바꿀 것을 주문했다. 정부의 하드웨어는 물론이고 소프트웨어까지 다 바꾸자는 것이다. 지금 정부 꼴을 보면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본다. 그러려면 이번 화재에서도 드러난 정부 시스템의 오작동 실태부터 정밀 감식하는 게 순서다. 그런 뒤에 문제를 해결하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그래야 어이없는 재난이 되풀이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