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방패’ 작은 배엔 약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7면

“표적의 몸체가 지극히 작은 경우라면 레이더가 신호 포착을 놓칠 수도 있다.”

일본 해상자위대 요시가와 에이지(吉川榮治) 참모총장은 이지스함 아타고호가 19일 소형 어선을 들이받은 사건을 발표하면서 곤혹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최첨단 장비를 갖춘 이지스함이 결정적인 ‘맹점’을 드러냈다는 점에 대해 일본은 큰 충격을 받고 있다. ‘신의 방패’로 불리는 아타고가 도쿄 앞바다 80㎞ 지점에서 어선을 발견한 것은 충돌하기 불과 2분 전으로 드러났다. 이지스함의 초병은 오른쪽 방향에 녹색 라이트를 단 어선이 있는 것을 육안으로 확인했다. 아타고는 정지하기 위해 급제동을 했지만 충돌을 피하기엔 너무 늦었다. 어선 ‘세이토쿠마루(淸德丸)’는 두 동강이 나 버렸다. 세계 최고의 레이더 탐지 능력을 갖추고 있는 것으로 정평이 난 아타고로서는 불명예스러운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미국은 일본이 이지스함을 보유한 것만으로 북한이나 중국·러시아에 대해 막강한 군사 억지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여겼다. 건조 비용 1400억 엔(약 1조2500억원)이 투입된 최신예 아타고의 능력을 보면 이런 평가가 과장만은 아니다. 해상에서 사방으로 약 400㎞ 범위 내에서 움직이는 표적 100개 이상을 동시에 추적하면서 이 가운데 10개가량에 대해서는 동시 공격이 가능하다. 여러 대의 전투기가 한꺼번에 공격해 와도 자신은 물론 함대를 지켜내는 고유의 역할을 해낼 능력이 있는 것이다.

이런 첨단 능력에 문제가 생긴 것은 참모총장도 부분적으로 인정한 것이지만 해상의 소형 물체를 레이더가 잘 포착하지 못하는 결함도 배제할 수 없다. 어선의 재질이 강화 플라스틱(FRP)이어서 레이더가 놓쳤다는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더 근본적인 문제는 승무원들의 운용 기술과 훈련 부족 때문이라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지스함의 첨단 장치는 대공 능력을 중심으로 설계돼 있는 반면 해상 경계는 인력이 담당해야 한다. 하와이에서 돌아오던 아타고호는 항구에 접근할 때 소형 배와의 충돌 가능성을 감안해 초병을 더 세워야 했지만 보초는 평소 체제처럼 단 3명만 있었다. 군기가 빠졌기 때문에 사고가 났다는 지적도 이래서 나오는 것이다.

해상보안청은 아타고호 함대원들이 어선을 제때 발견하지 못해 충돌 방치 조치가 늦어졌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보고 이들의 과실 여부 등에 대한 조사를 계속하고 있다. 일본은 현재 이지스함을 5대 보유하고 있으며 올해 중 최신예 아타고급을 한 대 더 취역시킬 예정이다.

도쿄=김동호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