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대사 남편이자 전천후 문화인 팀 스트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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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뉴질랜드 대사 남편, 가수, 영화배우, 제작자.’

팀 스트롱(53·사진)이 내미는 명함에 적힌 내용이다. 제인 쿰스 뉴질랜드 대사의 배우자로 한국 생활을 한 지 3년째. 뉴욕에서 활동했던 프로 재즈 가수이자 작곡가인 그는 한국에서 전천후 문화인으로 활약하고 있다. 지난해 개봉한 ‘상사부일체’에 마피아 두목 역을 맡아 영화배우 데뷔를 했다. 올 9월 개봉 예정인 영화 ‘고고70’에서 1960년대 가수로 출연하는 배우 조승우씨에게 소울뮤직 개인 레슨을 해줬다. 본업도 소홀히 하지 않는다. 대사관 관련 행사에서 연주와 노래를 하며 사실상의 ‘뉴질랜드 홍보대사’ 역할을 하는 것은 물론, 지난해에는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의 극장 용에서 단독 재즈 공연도 했다.

삼계탕을 제일 좋아하고 숭례문같이 아름다운 건물이 소실되었다는 걸 믿을 수 없다는 그를 동빙고동의 관저에서 만났다.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레게머리와 친화력 강한 웃음이 눈길이 갔다.

인터뷰 도중 11살이 된 외아들 코너 코너가 달려들어 안기자 따뜻한 아빠의 모습도 보였다. 코너는 “아빠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요!”라고 외쳤다. 오후 6시경, 하루 일과를 마치고 돌아오는 부인을 따스하게 안아주며 맞이하는 그는 일하는 여성들이 꿈꾸는 이상적인 남편이 아닐까. 다음은 일문일답.

-외교가에선 당신을 트로피 남편(trophy husband: 성공한 여성과 결혼해 가사를 전담하는 남편)으로 부르기도 하던데.

“(어깨를 으쓱하며) 내겐 오히려 제인이 트로피다. 아들에겐 나보다는 엄마를 본받으라고 하지만.(웃음) 내겐 내가 살아가는 방식이 있다. 사람마다 사는 법이 제각기 다르다는 걸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그게 인생이지 않나.”

-부인과는 어떻게 만났나.

“뉴욕에서 뮤지컬 배우와 제작자, 재즈 음악가로 활동을 하다가 당시 주유엔 뉴질랜드 대사였던 제인을 만났다. 친구가 사귀고 싶어하던 여자의 친구여서 알게 됐다. 서로 정치·역사 등에 대한 얘기가 잘 통했다. 결혼할 때 망설임이 없진 않았다. 뉴욕에서 착실히 경력을 쌓던 중이었고, 막 앨범이 나오려고 할 때였다. 하지만, 제인을 놓치기가 싫었다. 난 생각 없고 치장만 하는 여자는 싫다. 제인처럼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을 원했다. 아버지의 유언도 ‘제인과 결혼하라’였다. (웃음) 그녀가 외교관으로 성공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싶었고, 그래서 함께하기로 결심했고, 93년 뉴질랜드에서 식을 올렸다. 오늘날까지 그랬고, 앞으로도 후회는 없다.”

-대사 남편으로서 음악을 계속하기가 어렵지 않나.

“다행히 내 직업은 어디서든 할 수 있다. 제인의 이전 부임지인 러시아에서도 그랬고, 재즈를 즐기는 사람들이 있는 대도시라면 어디에서든 계속 공연해왔다. 그런 의미에서 서울에 있게 된 건 행운이다. 한국 사람들은 문화 감수성이 뛰어나고 재능도 있으며 역사를 소중히 생각한다. 기회만 된다면 한국 전역을 돌며 공연을 하고 싶다. 몇 년 뒤면 한국을 떠나야겠지만 다시 돌아오고 싶은 나라다. 작곡도 계속 하고 있다. 참, 아내를 위해 작곡한 노래도 있다. 제목은 ‘나의 유일한 사랑(My One and Only Love)’이다.”

-음악은 어떻게 시작했나?

“9남매의 막내였는데, 집에는 항상 음악이 있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온 집안을 대청소하곤 했는데, 그 때 다들 마루에서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노래 부르며 춤추곤 했다. 그러다 친구의 오디션을 구경하러 갔는데, 오히려 나더러 해보라는 제의를 받고 연습을 시작했다. 그걸 계기로 뮤지컬과 음악을 하게 되었고, 이왕 할 거 본거지인 뉴욕에서 하고 싶다는 생각에 이사했다. 그러다 제인을 만난 거다. 언젠가는 뉴욕에 돌아가서 음악가로서 성공하고 싶다.”

글=전수진 기자, 사진=양영석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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