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카스트로의 퇴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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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쿠바를 49년간 통치해 왔던 피델 카스트로 국가평의회 의장의 퇴진은 ‘이념의 시대’가 몰락했음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 한다.

그는 1959년 혁명을 일으켜 바티스타 독재정권을 전복한 뒤 아메리카 대륙 최초이자 유일의 공산국가를 세웠다.

집권 초 토지 분배, 무상 의료, 무상 교육 등의 정책은 그가 이상사회를 건설하려 했다는 점을 보여준다. 81세의 카스트로는 퇴진을 발표하면서 “나의 유일한 바람은 한 명의 병사로서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투쟁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오늘날 쿠바는 1인당 국내총생산(GDP) 4500달러의 가난한 나라일 뿐이다. 생필품은 만성적으로 부족하고 국민의 해외탈출이 잇따르고 도시 빈민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다. 수출의 80% 이상을 설탕에 의존하고 있다.

오늘의 현실은 카스트로의 잘못된 선택이 가져온 당연한 결과다. 카리브해의 섬나라 쿠바는 면적 11만㎢, 인구 1139만 명에 불과한 소국이다. 위치는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의 플로리다주 코앞이다. 그런데도 꿋꿋하게 반자본주의, 반미 노선을 걸어왔다. 미국으로부터 40여 년째 경제제재를 받으면서 600여 회의 암살 시도 속에서도 정권을 유지해 왔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하다.

그 배경에는 언론을 탄압하고 지식인을 감금하고 정적을 무자비하게 숙청한 철권통치가 자리 잡고 있다. 반면 개인적으로 부패하지 않은 지도자로서 문맹률 0.2%, 예상 기대수명 77세를 달성했다는 업적도 있다.

하지만 오늘날 카스트로는 쿠바의 경제발전을 가로막는 걸림돌일 뿐이다. 그의 퇴진이 발표되자 쿠바를 포함한 카리브해에 집중 투자하는 미국의 쿠바 펀드(HCBF) 주가가 17% 올라 사상 최고가를 기록했다. 그의 후계자로 꼽히는 동생 라울 카스트로(76)는 최근 “포탄보다는 콩”이라며 “구조적 개혁이 필요하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진다. 그렇다. 공산주의는 이미 몰락했다. 민주주의를 기초로 하지 않고, 국민의 생활을 윤택하게 만들지 못한다면, 모든 이상은 헛것이다. 그것이 사회주의든 인민민주주의든… 북한은 이를 직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