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속에서>北向언덕의 토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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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연초록빛이 돋아나니 봄언덕을 바라볼 때면 생각나는 우화가 있다.남향의 따뜻한 언덕에 사는 토끼와 북향의 춥고 음산한 비탈에 사는 토끼중 어느 토끼가 먼저 봄이 온 것을 알고 뛰어 나올 것인가.대부분 볕이 잘드는 남향의 토끼가 먼저 일 것이라고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추위와 굶주림에 지쳐 밖을 내다보던 토끼의 눈에 무엇이 보였을까를 생각해보면 그 해답은 달라진다.남향의 토끼는 건너편 북쪽의 눈쌓인 풍경을 보며 봄이 아직 멀었다고만 여겨 들어앉아 있었다.반면 북향의 토끼는 남쪽 언덕의 파 릇한 봄의 정경을 보고 껑충 뛰어나와 봄을 맞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 우화는 우선 인식과 발견의 상대성을 말해주는 듯하다.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환경에 대해 객관적일 수 없다.건너편 산자락의 풍경을 통해 봄을 인식하듯이 우리는 상대적인 목표와 지향점을 바라보면서 어제와 오늘의 삶을 견딘다.
그래서 나는 여기에 또 하나의 해석을 붙여본다.북향의 토끼가겪어낸 추위와 굶주림이 그를 동굴 밖으로 나오게 했다고.몸서리치는 겨울의 기억이 봄을 먼저 발견하게 해준 것이라고 말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멀리 산자락을 보기 위해 동굴 입구를 서성거리지 않았을 것이고 구태여 봄을 기다릴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우리의 겨울은 어떠한가.영하 몇십도의 기온에도 아랑곳없이 온실속에서 꽃들은 만개(滿開)하고,짧은 소매를 입고 겨울을 지내도 추위를 모르고 살 수 있게 됐다.온실의 안온함속에서 북향의토끼와 같은 봄의 파수꾼은 사라졌다.여느 해처럼 겨울은 지나갔으나 겨울을 뼈저리게 겪어낸 이는 많지 않았다.
그러기에 봄은 왔지만 그 소리없는 변화를 느끼기 어려운 불감증의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초록을 찾기 위해 역사의 언덕을바라보고 또 바라보던 그 황막했던 시절의 기억은 희미해져 간다.우리가 춥고 가난한 북향 언덕의 토끼였을 때, 대지 위로 움트는 싹 하나도 얼마나 눈물겹게 바라보았던가.그 시절을 새삼 떠올리는 것이 과거에 대한 낭만적인 그리움만은 아닐 것이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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