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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장관이 일하는지 보겠다, 분초 계획 세워라, 뛰어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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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국정 운영에 관한 합동워크숍’이 19일 경기도 과천 중앙공무원교육원에서 열렸다. 워크숍을 주재하는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의 모습이 회의실 출입문에 난 창문 너머로 보이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불도저 본능인가, 자신감의 표출인가.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의 속전속결식 행보가 연일 화제를 낳고 있다. 전날 장관 후보 명단을 발표하자마자 이 당선인은 장관 후보자, 청와대 수석 내정자들과 함께 과천의 중앙공무원교육원으로 직행했다. 1박2일에 걸친 국정 운영 워크숍을 위해서였다. ‘오후 8시 조각(組閣) 발표’란 초유의 사태로 여의도 정국은 시계제로였지만 이 당선인은 거침이 없었다.

이 당선인은 지난 주말 청와대 수석들과의 워크숍 때처럼 19일 아침을 운동장 구보로 열었다. 이 당선인 뒤로 30여 명이 줄지어 운동장 열다섯 바퀴를 50여 분간 돌았다. 일곱 바퀴를 돈 뒤 이 당선인은 “방향을 바꿔 시계반대 방향으로 돌자”고 제안했다. 이동관 인수위 대변인은 이를 두고 추후 “뒤처진 사람들에 대한 배려다. ‘서민과 약자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성장’이라는 컨셉트를 구현해 보자는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하기도 했다.

이 당선인은 이틀째 회의 말미에 “나라를 위해 일하겠다는 욕심밖에 없는, 정말 일하고 싶은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장관 후보자들을 향해선 “새로 부임하면 지난 10년과는 분명히 달라져야 한다. 공직사회의 문화를 변화시켜야 한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러면서 “자리 배치나 결재방식 등 사소한 것부터 글로벌한 기준에 맞게 변화시켜라. 어느 장관이 잘하는지 지켜보겠다” “그렇다고 단합해서 똑같이 하지 말고 각자 개성대로 해 보라” “디지털 시대엔 분초당 계획을 세워야 한다. ‘월말까지, 주말까지, 중순까지’란 아날로그 시대 용어를 쓰지 말고, 하루도 오전과 오후로 세분해 써라” “산하기관에 지침을 내려 이래라 저래라 하지 말고 스스로가 먼저 바뀌면 파급효과가 있을 것이다” “통상적 업무나 결재에만 몰입하면 목표를 잃어버리고 아무것도 못 한다” 등 수많은 이야기를 쏟아냈다. “청계천 복원이란 환경이 서울시민의 생활양식을 바꾸더라”며 거듭 장관들의 분발을 독려했다.

거창한 담론보다는 경험에 근거한 실질적·구체적인 토론을 즐기고, 청와대 근무 예정자들에게 ‘아! 이제 죽었구나!’란 오싹한 기분을 들게 할 정도의 ‘일중독’을 과시한 워크숍이었다. 한번 이야기를 시작하면 끝이 잘 보이지 않는 다변가로서의 ‘이명박 스타일’도 선보인 1박2일이었다.

일견 노무현 대통령과 비슷한 점이 있다고 해서 네티즌 사이엔 이 당선인을 향해 ‘노명박’(노무현+이명박)이란 신조어가 등장하고, ‘우파의 노무현’이란 우스갯소리도 나온다.

이날 장관 후보자들은 “영어교육도 필요하지만 국어를 더욱 아름답게 발전시키는 노력도 중요하다”(교육인적자원부 김도연),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문화를 보이고 들리는 문화로 발전시키겠다”(문화관광부 유인촌), “5000년 동안 농어업은 생산에 주력했지만 이젠 패러다임에 변화가 필요하다”(농림부 정운천)는 포부를 쏟아냈다. 그러자 이 당선인은 “총괄적 소감으론 누가 뽑아서 이렇게 잘 뽑았을까란 생각을 하게 된다”고 농담도 했다.

전날 밤 다과회에서 이 당선인은 여성 참석자들을 향해 “내가 눈이 작아서 잘 안 보일 줄 알지만 다 보고 있다. 어리석은 남성들이여, 일 잘하는 여성을 보라”고 했다.

서승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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