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법정울린 피해자진술-총기난사사건 변호天國서 이례적 허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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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지난주 미국의 롱 아일랜드 법정에선 한국계 김미원(女.사진)씨가 눈물이 뒤범벅된 얼굴로 가녀린 어깨를 떨며 2년전 여동생미경씨를 앗아가버린 사건에 대한 마지막 진술을 했다.
아무리 죄인이라도 당당하게 변호사를 대동하고 때로는 자기를 고발한 사람들까지 비웃을 수 있는 법률의 천국인 미국.그러나 지난주 롱 아일랜드 법정은 미국의 이런 법정관행이 과연 정당한가라는 물음을 던지기에 충분했다.
높은 수임료를 받는 변호사들이 닳아빠진 모습으로 O J 심슨을 변론하는 모습만 지켜봐온 미국 국민들에게 롱 아일랜드 법정은 너무나 생생하고 충격적이었으며 지나치게 당당한 모습의 범인을 지켜보던 방청객들은 치를 떨었다.
이날 피고인은 자메이카에서 이민온 콜린 퍼거슨.그는 93년 12월7일 롱 아일랜드 기차 안에서 퇴근길의 승객들에게 무차별총기를 난사,김미경씨를 포함한 6명을 죽이고 19명에게 부상을입힌 혐의로 기소되었다.
롱 아일랜드 법원은 선고를 앞두고 이날 이례적으로 당시 사건의 피해자와 그 가족들에게 마지막 진술 기회를 줘 미국민들의 심금을 울렸다.
이번 사건으로 남편을 잃고 아들은 불구가 된 캐롤린 매카시는휠체어에 앉은 아들 케빈과 법정에 나와 퍼거슨의 얼굴을 향해 『우리는 노력하면 다시 웃음을 찾을수 있겠지만 당신은 결코 그러지 못할 것』이라고 울먹였다.7세된 아들을 잃 은 프랭크 바커는 『우리는 퍼거슨이 치른 개인적인 전쟁의 희생자들』이라고 한편으론 그를 측은하게 여기며 담담하게 말했다.
그러나 퍼거슨은 재판과정에서 모든 잘못을 사회의 모순과 불합리 때문으로 돌리고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며 피해자를 조롱하는등너무나 당당하게 행동해 미국의 관행에 대한 회의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이 사건으로 24세된 아들을 잃은 패트릭셔 네틀톤(女)은 재판정을 향해 『피고인의 권리가 있다면 죽은 내 아들의 권리는 도대체 어디에 있나요』라고 반문했다.
진술대에 올라선 김미원씨도 마찬가지였다.그는 떨리는 목소리로퍼거슨과 자기 여동생을 비교했다.『당신과 내 여동생은 둘 다 소수민족 출신입니다.둘 다 피부색 때문에 일자리도 잃고 사랑에실패하고,그리고 간직해온 꿈도 산산조각났어요』 『하지만 내 여동생은 이런 고난을 꿋꿋하게 헤쳐나갔는데…』김씨는 퍼거슨에게 『당신은 남자인데도 거기에 대항할 용기를 갖지 못했어요…』라고울먹였다.법정은 숙연해졌다.
임신 7개월이던 몸으로 총탄을 맞았던 리자 콤바티는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는 퍼거슨을 향해 『나는 사건 직후 낳은 딸에게 당시의 사건을 회상하며 진정 어느 것이 선한 것이고,어떤 사람이 악한 것인지를 이야기해주곤 한다』고 또박또박 말한뒤 발언대를 내려왔다.퍼거슨은 고개를 떨구었다.
〈李哲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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