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합 자진신고 땐 형사처벌 못 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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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담합을 하더라고 공정거래위원회가 고발하지 않았다면 형사 처벌할 수 없다’.

담합을 자진 신고하면 고발을 면제해 주는 ‘자진 신고자 감면제’를 둘러싼 검찰·공정위의 신경전에서 법원이 공정위의 손을 들어줬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단독 구회근 판사는 13일 설탕가격을 담합 인상한 혐의로 기소된 삼양사와 대한제당에 각각 1억5000만원과 1억원의 벌금을 선고했으나, CJ에 대해선 공소를 기각했다. 또 합성수지 가격 담합에 가담한 호남석유화학과 삼성토탈에 대해서도 기각 판결했다. CJ·호남석유화학·삼성토탈은 담합 사실을 자진 신고해 공정위가 고발하지 않은 회사들이다. 그러나 검찰은 이들 업체도 담합에 가담했다며 추가로 기소했었다.

현행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은 담합에 대해 공정위의 ‘전속고발권’을 규정하고 있다. 공정위의 고발이 있어야만 검찰이 기소할 수 있는 것이다. 공정위는 그간 기업들의 자수를 유도하기 위해 담합 조사에 협조하는 기업에 대해서는 검찰 고발과 과징금을 면제해 줬다.

하지만 검찰은 지난해 11월 법률 적용을 엄격히 해야 한다며 공정위 고발 대상에서 제외됐던 이들 업체를 추가로 기소해 공정위와 마찰을 빚었다. 검찰은 형사소송법상 친고죄의 경우 공범이 고소되면 다른 공범에게도 효력이 미친다는 ‘고소불가분의 원칙’을 적용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피고인들에 대해 공정위의 고발이 있었음을 인정할 자료가 없다”며 검찰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공정위 지철호 홍보관리관은 “담합은 구체적인 증거물이 확보되지 않으면 이를 증명하기 쉽지 않다”며 “이 때문에 증거물을 제시하는 자진 신고자에 대해서는 각종 혜택을 늘려가는 게 국제적 추세”라고 말했다. 그러나 검찰은 즉각 항소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이처럼 공정위의 재량을 사실상 인정해 주는 판결이 나오면서 제도적 허점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담합으로 가장 많은 이익을 얻은 회사가 자수했다는 이유만으로 과징금과 처벌을 면책해 주는 것은 곤란하다는 것이다.  

손해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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