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도는 경수로협상-동경,국내정치 기반다지는 好材활용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일본의 발빠른 대북(對北)접근은 선거를 겨냥한 정치권의 과속(過速)운행인가 아니면 정부가 주도하는 외교전술인가.김영삼(金泳三)대통령을 비롯,한국정부가 계속 강도높은 경계신호를 보내고일본의 언론들조차 시기선택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 고 있음에도 연립여당과 외무성이 짝짜꿍이 되어 밀어붙이는 뱃심은 어디서 나오는 것인가.
지금까지 일본정부는 韓.美.日 3국의 이해가 교차하는 북한문제에 대해선 대체로 신중하거나 적어도 한국정부의 입장을 곤란하게 하지는 않았다.
지금 베를린에서 엎치락뒤치락하는 경수로협상은 다음달 21일이시한이다.미국은 한국형을 한사코 거부하는 북한에 설득과 협박을거듭하며 막바지 진땀을 흘리고 있다.6월 지방자치단체장 선거를앞둔 김영삼정부는 달리 양보할 길이 없는 형 편이다.
이런 판에 일본은 한 두달을 못참는 무슨 절박한 이유라도 있는가.우선 연립여당이 처한 국내정치의 곤경탈출 필요성 때문인 것으로 볼 수 있다.
자민.사회.신당 사키가케로 구성된 연립정부는 이념.리더십의 부재로 정책집행에서 실기(失機)한 적이 많아 각종 여론조사에서계속 지지율이 떨어지고 있다.그런 가운데 통일지방선거의 날짜가다가오고 있다.비록 지방선거이긴 하지만 이번 선거는 통합야당인신진당과의 첫 대결로 그 결과가 곧 이어질 중.참의원선거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일본정당들은 국내정치가 잘 안풀릴 때는 대외정책에서 득표요인을 찾아 지지를 끌어내는 수법을 구사해왔다.70년대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 총리가 일중(日中)수교를 통해 국내 정치기반을 일거에 다진 것은 좋은 예다.
효고(兵庫)현 남부지진,지하철 독가스사건 등으로 우울해진 국민들의 관심을 다른 국내문제로 상쇄시키는데 한계를 느낀 연립여당에게 대북접근은 좋은 탈출구일 수 있다.단독정권 복귀를 노리는 자민당이 방북단 파견의 창구역을 맡고 나온 것 이나 대북교섭의 주도권을 빼앗긴 사회당이 별수없이 동승(同乘)하지 않을수없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면 일본 외무성이 전례없이 팔을 걷어붙이고 나오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외무성은 지금까지 대북접근에서 한국입장을 고려하는 자세를 취해왔다.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방북단 좌장인 와타나베 미치오(渡邊美智雄)前외상을 만나 의견조정을 했다.이에대해한반도 전문가들은『日외무성이 美 국무부로부터 뭔가 언질받은 것아니냐』고 분석한다.이를테면 미국은 북한과 쉽게 합의를 끌어내기 위해 일본과 북한을 접근시켜 한국으로 하여금 고립감을 느끼게 해 강경일변도 입장을 누그러 뜨리려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본의 성급한 대북접근은 한국을 점점 곤란하게 만들고북한의 일본카드 효용성을 높여주었다는 점에서 결코 바람직스럽지않다는 지적이 다.
[東京=吳榮煥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