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숭례문 … 릴레이 추도사 ① 소설가 정이현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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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언제 처음 ‘남대문’을 보았는가. 그게 언제였는지, 슬프게도 나는 기억할 수가 없다. 그건 이를테면 ‘고향의 봄’ 이라는 노래를 처음 들었던 것이 언제인지, 또는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탤런트 이순재씨의 연기를 처음 보았던 것이 언제인지를 묻는 질문과 비슷하게 느껴진다. 세상에는 원래부터 당연히 그 자리에 있는 것으로 여겨지는 것들이 있다. 서울에서 태어나 삼십 년이 넘도록 살아온 나에게 남대문은 그저 남대문일 뿐, 특별할 것도 새로울 것도 없는 이름이었다. ‘언제나 거기 있는’ 일상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다만 이런 순간들이 떠오른다. 열여덟 살, 야간자율학습에 지쳐 버스 안에서 꾸벅꾸벅 졸다가 깜짝 놀라 정신을 차려 보니 눈앞에 낯익은 남대문이 보였다. 남대문은 아무 말도 없이 푸근하게 웃는 것 같았다. 잠결에 엄마가 따뜻한 손으로 이마를 짚어 줬을 때처럼 나는 안심하며 다시 눈을 감았다.

스물 몇 살 무렵에는 남산타워에 올라갔다가 명동을 거쳐 남대문까지 걸어갔던 적도 있다. 초여름 저녁, 선선하고 맑은 바람이 불었고 막 친해지려고 하던 누군가와 함께였다. 우리는 앞으로 가보고 싶은 세계 곳곳의 도시들에 대하여 아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늘 떠나고만 싶던 지루한 고향 서울이나 영원불멸하게 그 자리에 있을 것처럼 견고하던 남대문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지금은 연락이 끊어진 그 친구도 아직 이 도시 어딘가에 살고 있을까? TV 생중계를 통해 활활 불타는 남대문을 바라보면서 나만큼 망연자실하고 황망했을까?

숭례문 화재 사건이 유난히 충격적이었다면, 그것은 안전하고 평화로워 보이던 평범한 세계가 어느 날 갑자기 아무런 예고도 없이 파괴되어 버릴 수 있다는 공포에 다름 아닐 것이다. 어떤 상상력으로도 예측할 수 없었던 참사의 밤이 지나고, 아침이 밝았다. 비참하게 불타버린 채 초라한 모습을 드러낸 숭례문 앞에서 설명하기 힘든 무력함과 가슴의 통증을 느낀다. 방화범이 검거되고, 토지보상 문제의 개인적 화풀이 때문에 불을 질렀다는 범행 동기가 발표되었다. 방화의 원인을 둘러싼 직간접 책임 논란, 문화재 관리 소홀과 향후 대책에 대한 논의가 한창이지만 한번 잃어버린 것은 절대로 되돌릴 수 없어서 더욱 막막하다.

전소된 숭례문 앞에 시민들의 안타까운 마음을 담은 조화가 늘어나고 있다. 12일엔 ‘죄송합니다. 잘못했습니다’라는 리본이 달린 화환이 배달됐다. [사진=박종근 기자]

시간은 곧 흐를 것이다. 타오르던 불이 꺼지고 재를 깨끗이 쓸어버린 자리에서 다시 일상생활이 시작될 것이다. 불탄 잔해로 남은 남대문을 지나쳐 시민들은 바삐 출퇴근을 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러 가고 울고 웃으며 살아갈 것이다. 그 붐비는 생활의 한가운데를 살아가다가 문득 바라다본 허공에 그때의 그 남대문이 없을 때, 마음속의 텅 빈 자리를 깨달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 시간이 얼마나 지나더라도, 그리하여 지금의 고통이 아주 작고 희미한 상처 자국으로 남게 되더라도, 오늘의 상실감을 끝까지 잊어버리지 않는 것. 그 상처 자국을 서늘하고 똑바른 시선으로 끝까지 응시하는 것. 그것만이, 늘 거기 있었기에 아무 것도 해주지 못한 남대문을 위해 할 수 있는 유일한 조문(弔問)일지도 모른다.

이 어이없는 사고가 결과적으로 우리 사회를 한 단계 성숙시키는 하나의 계기가 되기만을 속절없이 바란다.

글=정이현 소설가, 사진=박종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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