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에 간이식 '새 생명' 선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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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수술을 앞두고도 전혀 무섭지 않았어요. 아플 것이란 걱정보다 그저 수술이 잘 돼 아빠가 낫기만 빌었어요."

10년 넘게 간경화로 투병해온 아버지 이문섭(46.군무원)씨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간 일부를 떼어준 아름(17.경기도 시흥 정왕고2)양은 "어릴 때부터 아버지를 꼭 살려내겠다고 굳게 다짐해왔다"고 말했다.

지난달 4일 李씨 부녀는 장기이식을 위해 수술대 위에 올랐다. 22시간에 걸쳐 600g의 간을 이식한 수술은 성공적이었고 두 사람 모두 건강하다는 판정을 받았다. 병세가 호전된 아버지 李씨는 지난 1일 퇴원과 함께 마침내 병마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아버지 李씨의 투병은 1993년 정기건강검진에서 C형 간염 판정을 받으면서 시작됐다. 이미 간염이 간경화로 진행돼 대부분을 들어내야 할 정도로 심각했다.

다른 사람의 간을 이식받아야 건강을 되찾을 수 있지만 적격자를 찾지 못했다. 간 이식을 해주겠다는 李씨의 친지 두 명을 정밀 검진한 결과 모두 지방간으로 판명났다. 1남2녀 중에서도 둘째인 아름양만이 혈액형이 같아 이식이 가능했다.

그러나 당시 아름양의 나이는 겨우 여섯 살. 법으로 정한 장기이식 제한연령인 16세에 한참 모자랐다. 적격자가 나올 때까지 간 이식을 마냥 미뤄야만 할 상황이었다.

이식받을 간을 찾지 못한 李씨는 이후 10년간 통원치료을 받으며 가슴을 도려낼 듯한 통증을 참아야만 했다. 온몸이 퉁퉁 붓고, 피부색이 검어지고, 눈에는 황달기가 도는 등 증세는 심각해졌지만 뾰족한 수가 없었다. 병마와 회사의 격무에 시달리던 李씨는 지난해 8월 병세가 악화돼 쓰러진 뒤 병원에 입원했다.

지난해 12월 28일, 아름양이 만 16세를 넘긴 생일날. 아름양은 아버지가 입원한 서울아산병원을 찾아가 장기이식 수술을 자청했다. 아버지와는 상의조차 하지 않은 결정이었다. 아름양은 "늘 힘들게 투병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단 하루라도 더 지켜볼 수 없었다"고 했다. 그러곤 수술대에 올랐던 것이다.

아버지 李씨는 "딸이 너무나 고맙고 자랑스럽지만 한편으로는 안타깝다"며 "내게 제2의 삶을 안겨준 딸을 생각해서라도 남은 생은 욕심을 버리고 어려운 사람을 돕는 데 쓰겠다"고 말했다.

이철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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