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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람] 할리우드가 알아주는 韓人분장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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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특수분장. 인간의 극대화된 상상력을 사각의 스크린으로 옮겨 놓는 이 직업에 관심을 갖는 젊은이가 늘고 있다. 공상과학(SF)영화나 공포영화에서 더욱 진가를 발휘하는 미 할리우드의 특수분장 파트에 가녀린 체구의 한인 여성이 맹활약하고 있다.

6년차 특수분장 전문가인 유연수(35.미국 이름 다이애너 유)씨가 주인공이다. '그린치''혹성탈출''맨 인 블랙Ⅱ''링''헌티드 맨션' 등 대표적인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에서 작업한 유씨는 현재 할리우드 최고의 특수분장 스튜디오인 '시노베이션 스튜디오'의 스태프이자 이 분야에서 일하는 유일한 한인이다.

시노베이션 스튜디오는 특수분장의 대부로 꼽히는 릭 베이커가 운영하는 곳이다. '킹콩''스타워즈''비디오드롬''배트맨 포에버''너티 프로페서''맨 인 블랙' 등 다양한 작품에서 실감나는 특수분장을 선보인 베이커는 아카데미 특수분장상에 열번 추천돼 여섯번을 수상한 관록의 소유자다.

유씨가 특수분장가의 길로 들어선 것은 1998년. 고려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95년 결혼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간 유씨는 뭔가 전문적인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한 메이크업 스쿨에 등록했다. 졸업 후 잠시 광고 메이크업을 하던 그는 지인의 소개로 현재의 '시노베이션 스튜디오'에 들어가게 됐다.

"입사 후 처음 작업한 작품이 '그린치'였어요. 영화를 제작하는 내내 등장 인물들의 귀를 만들었는데 나중에 세어보니 5천개나 되더군요. 한번은 힘든 촬영에 짜증이 난 영화배우 짐 캐리가 몇개월간 애써 만든 의상을 찢어버리는 바람에 며칠 밤을 새워 수선한 적도 있어요."

그렇게 고생한 첫 작품 '그린치'가 2002년 아카데미 분장상을 탔을 땐 기쁘기에 앞서 얼떨떨하기만 했다고 유씨는 회상한다.

'맨 인 블랙 Ⅱ'를 찍을 때 '메뚜기 외계인' 중 한명으로 직접 출연한 적도 있었다는 그는 "화려한 배우보다는 뒤에서 배우의 연기를 돋보이게 해주는 분장사가 천직인 것 같다"고 말한다.

처음 입사했을 땐 '청소만 시켜줘도 감지덕지'라고 생각했다는 그는 현재 10년.20년 된 고참들을 제치고 부팀장급 직위에 올라 있다. 한국인 특유의 성실함과 꼼꼼함, 한번 일을 맡으면 밤을 새워서라도 끝내고 마는 악바리 근성이 '경험 부족'의 그를 다른 뛰어난 재주꾼들과 맞설 수 있게 했다.

"특수분장은 섬세하고 꼼꼼한 동양 여성들에게 매우 적합한 분야입니다. 할리우드에서는 영화 제작과 관련한 모든 분야의 종사자를 전문직으로 대우해주기 때문에 보람도 느낄 수 있고 보수도 좋은 편이죠."

디자인.몰드.헤어.페인팅.의상 등 특수분장의 전 분야를 두루 섭렵하고 대가(大家)의 반열에 오른 뒤 후진 양성의 길을 가겠다는 유씨는 "기회가 된다면 한국 영화 제작에도 참여하고 싶다"고 말했다.

LA지사=양경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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