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말 藝人의삶 당시언어로복원-김성동 대하소설"國手"출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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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78년 『만다라』로 화제를 불러 일으켰던 김성동(48)씨가 조선말의 생활상을 당시의 언어로 고스란히 복원해 낸 대하소설 『國手』(솔刊)를 펴내 관심을 끌고 있다.
『國手』는 임오군란에서 동학혁명 직전까지를 시대배경으로 바둑.거문고.판소리.춤.재주넘기등에 일생을 바친 예인들의 삶을 통해 스러져 가는 전통적인 가치를 재조명한 작품.이번에 1부 4권까지 출간되고 올해중으로 5권이 마저 나올 예정 이다.
김씨는 이 작품에서 「자의식」「절망」「방황」「열등감」등의 현대어를 거리낌없이 써 오던 역사소설의 문제점을 단숨에 넘어선다.김씨의 문체는 「구메도적(좀도둑)」「갓나희(계집)」「근각(신원조회)」등 전통어를 그대로 사용하면서도 미세한 뉘앙스를 제대로 살려 골동품 같은 인상을 주지 않는다.대부분의 역사소설들이당시의 언어감각에 익숙지 않은 상태에서 일부 단어만 삽입시키는수준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는 것과 크게 대비된다.
문학평론가 임우기씨는 『김씨의 전통어 구사력은 사전이나 자료에 의존한 수준을 넘어 거의 생래적이라 할만하다』며 『어릴때 한학자인 할아버지로부터 훈육을 받은 김씨가 정규교육을 받지 않은 점이 오히려 결정적인 도움이 된 것같다』고 김 씨의 문체를평가했다.
문체와 함께 『國手』의 또 다른 개성은 인물과 구성에 있다.
『國手』는 대하소설로는 드물게 장길산과 같은 영웅적인 중심인물이 없이 다양한 등장인물들이 소설의 무게를 나누어 짊어지고 있다.이 작품에서 등장하는 바둑의 귀재인 석규,판소 리에 재능을보이는 갈꽃이,산적출신으로 농민들의 봉기를 충돌질하는 금칠갑,무예의 달인인 변협등은 서로가 그물망처럼 얽혀 이야기를 함께 이끌어 나간다.
김씨는 『승부에 집착하지 않는 국수의 풍류의 미학을 보여주기위해서는 수직적 가치관의 산물인 강력한 중심인물을 배제할 필요가 있었다』고 내용과 구성의 연관성을 설명했다.
국수(國手)는 바둑은 물론 판소리.의술.그림등 자기분야에서 1인자의 경지를 구축한 쟁이들을 총칭하는 말.김씨는 『국수 칭호는 경쟁에 의해 획득하는 것이 아니라 기다림끝에 민중들이 주는 꽃다발같은 것이었다』며 『국수의 정신은 모든 것이 경쟁속에매몰돼 가는 요즘의 세태에 되새겨야 할 우리의 소중한 가치』라고 강조했다.

<남재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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