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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장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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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이집트의 절세미인이었던 클레오파트라는 장미광(狂)이었다. 그녀는 남성들이 자신을 오랫동안, 그리고 강하게 기억할 수 있도록 장미를 사용했다. 장미 냄새를 맡을 때마다 자기를 떠오르게 하기 위해서였다. 로마 제국의 통치자인 안토니우스를 유혹할 때도 방에 최음효과가 있는 장미 향수를 잔뜩 뿌렸다. 그 냄새를 잊지 못한 안토니우스는 카이사르 휘하의 군사에 패해 죽으면서 자신의 무덤에 장미꽃을 뿌려달라고 했을 정도다. 빨간 장미였다. 그래서 빨간 장미의 꽃말은 ‘욕망, 사랑 그리고 열정’을 뜻한다.

1450년 백장미를 문장(紋章)으로 하는 영국의 봉건귀족 요크가(家)와 빨간 장미를 문장으로 한 랭커스터가 사이의 30년 전쟁은 장미전쟁으로 불린다. 헨리 7세가 ‘튜더 왕조’를 열며 장미전쟁은 끝났다. 빨간 장미와 백장미를 합친 튜더 왕조의 왕기(王旗)는 오늘날 영국 왕실의 문장으로 이어졌다. 그래서 ‘튜더 장미’의 꽃말은 물과 불의 결합, 즉 통일과 평화를 의미한다.

2만5000종에 달하는 장미에는 3000개 정도의 색깔이 있다. 장미의 꽃말도 영어와 프랑스어를 합해 60종 이상이다.

‘파란 장미(Blue rose)’는 영어사전에 ‘불가능한’ ‘있을 수 없는 것(일)’으로 나온다. 장미에는 원래 파란 색소가 없어 아무리 품종개량을 해도 ‘파란 장미’란 있을 수 없음을 빗댄 것이다. 12세기부터 전 세계에서 온갖 교배를 시도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파란 장미’는 꿈의 영역이었다.

일본의 주류업체 산토리가 지난주 파란 장미의 재배를 정부로부터 승인받아 내년부터 시판에 들어간다고 발표했다. 장미에 델피니딘 청색 색소를 합성하는 팬지의 유전자를 이식, ‘있을 수 없는’ 파란 장미를 세상에 탄생시킨 것이다. 연구 시작으로부터 14년의 세월이 걸렸다. 산토리 창업자 도리이 신지로(鳥井信治郞)의 평생 입버릇이었던 “얏테 미나하레(도전하라)”의 결실이다. 2600억 엔 규모의 장미 시장에서 20%(520억 엔)는 파란 장미의 몫이 될 전망이다. 참고로 산토리가 14년간 투입한 비용은 ‘불과’ 30억 엔이다. 무엇보다 술만 만드는 줄 알았던 산토리가 이런 개발에 나섰고, 또 성공했다는 것이 놀랍고 흥미롭다. 술도 장미도 인간을 취하게 하는 점에서 통했던 것일까.

그나저나 앞으로 사전에선 ‘파란 장미’의 뜻을 ‘기적’ 혹은 ‘신의 축복’으로 바꿔야 할 듯하다. 불가능이라 생각됐던 모든 난관이 현실로 이뤄지는 ‘파란 장미’의 한 해가 되시길.

김현기 도쿄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