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업 주가 놓고 외국계·국내 증권사 평가 극과 극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6면

한국 조선업의 ‘잔치’는 끝났나.

최근 외국계 증권사가 잇따라 한국 조선업의 미래를 어둡게 보는 보고서를 내자 이를 둘러싼 논란이 거세지고 있다. 지난달 말 매쿼리에 이어 이달 초 골드먼삭스 증권이 국내 조선 업종의 목표 주가를 최고 63%나 낮춘 보고서를 냈다. 매쿼리 보고서가 나온 지난달 30일엔 조선주 주가가 10% 이상 떨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국내 증권사의 시각은 정반대다. 조선업을 둘러싼 국내외 여건이 지난해보다 좋아지지는 않겠지만 그렇다고 실적이 급격히 나빠질 이유도 없다는 것이다. 더욱이 지난달 국내 조선사의 수주 실적은 외국계 증권사의 우려와 달리 ‘호황’을 유지했다. 이 때문에 국내 증권사 애널리스트 사이에선 외국계 증권사 보고서의 ‘순수성’을 의심하는 시각도 있다. 연초 현대중공업을 비롯한 국내 조선주를 대거 ‘공매도(주식을 빌려 판 뒤 나중에 사서 되갚는 거래)’한 외국계 헤지펀드를 우회 지원하려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정점 지났다’ vs ‘우려 과도하다’=2007년 증시 상승을 이끌었던 조선업종이 최근 홀대받는 이유는 세계 경기 침체 우려다. 외국계 증권사는 세계 경기가 침체하면 물동량이 줄어 선박 발주가 줄고 그 영향으로 배 값이 떨어질 거라고 전망한다. 여기에다 원자재 가격 상승은 조선 업체의 수익성을 악화시킬 수 있다. 매출은 주는데 원료 값은 오르니 실적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지난해 조선주 급등이 실적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었던 만큼 실적이 개선될 여지가 없다면 목표 주가는 낮춰야 한다는 게 외국계 증권사의 시각이다.

그러나 국내 증권사는 이 같은 주장이 과장됐다는 입장이다. 대우증권 성기종 연구원은 “올 1월에도 국내 조선 업체들은 활발한 수주를 이어가고 있다”며 “특히 지난달 말 현대미포조선이 수주한 PC선(석유화학제품운반선)은 사상 최고가를 기록하는 등 배 값도 견고하게 유지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국내 대형 3사의 1월 선박 수주액은 모두 30억 달러가 넘어 지난해 1월 실적을 크게 앞질렀다. 특히 삼성중공업은 다섯 배에 가까운 실적을 올렸고, 지난해 1월 수주가 없었던 대우조선해양도 올해는 5억 달러어치를 수주했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사업계획을 세우는 1월엔 수주가 주는 게 보통인데 올해는 연초부터 수주량이 몰리고 있다”며 “각 업체가 올해 수주 목표를 일찌감치 올려 잡아야 할 것 같다”고 설명했다.

◇매도 보고서 순수성 논란=외국계 증권사가 국내 조선 업종에 ‘매도’ 보고서를 낸 시기와 외국인이 조선주 ‘사자’로 돌아선 시기가 겹치자 외국계 증권사 보고서가 ‘영업용’이 아니냐는 의구심이 불거졌다. 4일 현재 현대중공업 대차잔고는 377만 주다. 대차잔고란 빌려간 주식 물량을 말한다. 주식을 빌려가는 이유는 대부분 공매도 하기 위해서다. 주가가 떨어진다고 보고 주식을 빌려 판 뒤에 값이 떨어지면 싼 값에 되사 같은 물량만큼 갚고 남은 차익을 챙기는 전략이다. 주로 외국계 헤지펀드가 구사한다. 국내 조선주 대차잔고는 연초부터 급증한 뒤 지난달 말 주춤했다. 이 때문에 외국인이 빌려 판 주식을 갚기 위해 되사기 시작한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실제로 매쿼리 보고서가 공개된 지난달 30일 조선주가 급락하자 외국인은 ‘사자’로 돌아섰다. 결국 ‘큰손’ 고객인 외국계 헤지펀드가 조선주를 싸게 살 수 있도록 외국계 증권사가 ‘바람을 잡아준 게 아니냐’는 게 국내 증권사 일부의 시각이다. 이에 대해 골드먼삭스 홍보담당 전성민 상무는 “리서치 센터는 철저히 독립된 조직”이라고 반박했다.

고란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