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외룡 감독의 ‘섬기는 리더십’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8면

괌에서 전지훈련 중인 프로축구 인천 유나이티드가 지난달 31일 일본 J-리그의 FC 도쿄와 연습경기를 했다. 경기가 2-2로 끝나고 선수들이 경기장을 빠져나간 뒤 라커룸에서 선수들이 먹고 버린 생수통을 줍는 사람이 있었다. 장외룡 감독이었다.

이틀 뒤에는 숙소에서 버스로 10분 정도 떨어진 곳에서 훈련을 했다. 훈련이 끝난 뒤 선수들이 버스에 타고 있을 때 네 사람이 운동장에 남아 골대를 원래 위치로 옮기고 있었다. 이들은 신범철·김학철 등 코치였다.

장 감독은 ‘서번트 리더십(servant leadership)’이 몸에 밴 사람이다. 그는 “지도자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선수들의 하인이 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의 섬기는 리더십이 코치들에게까지 자연스럽게 ‘전염’됐다. 장 감독은 “선수들이 최대한 편안한 상태에서 경기와 훈련에 몰두할 수 있도록 지도자들이 도와줘야 한다”고 말했다.

장 감독은 지난해 국내 현역 감독으로는 처음으로 영국에서 1년간 축구 연수를 했다. 지난 연말 귀국한 그는 “이제 프리미어리그급 경기를 볼 수 있겠네요”라는 인사를 많이 받았다. 그러나 그는 세차게 고개를 흔든다. 그는 “퍼거슨이나 무리뉴가 와도 1년 만에 팀을 바꿀 수는 없다. 대신 ‘뭔가 변화하고 있구나’ 하는 느낌을 줄 수 있다면 성공한 것”이라고 대답한다.

장 감독은 “우리 선수들은 강한 압박을 빠져나갈 수 있는 기술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그런 선수들에게 프리미어리그급 경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장 감독은 ‘페어플레이’를 해답으로 제시했다. 태클을 당해 넘어졌다가도 벌떡 일어나고, 벤치나 선수가 심판 판정에 항의하면서 시간을 끌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선수들이 페어플레이를 하고, 경기 흐름이 빨라지면 팬들이 경기장을 찾을 것이라는 지론이다. 이 같은 변화를 통해 장 감독은 올해 인천의 평균 관중을 5000명 늘리겠다는 계획이다.

인천 연고 야구단 SK 와이번스의 이만수 코치가 지난해 ‘팬티쇼’를 펼친 것과 관련, 장 감독은 “축구장이 꽉 차면 나도 웃통 벗고 센터서클에 나가서 큰절을 하겠다”고 약속했다. 상체를 드러낼 것에 대비해 매일 밤 한 시간씩 몸 만들기를 하고 있다.

인천은 박이천 감독대행이 맡았던 지난해 58득점·54실점을 했다. 득·실점 장면을 비디오로 분석한 장 감독은 수비 밸런스에 문제가 있다고 진단했다. 그래서 수비 조직력을 가다듬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생각보다 효과가 빨리 나타나고 있고, 안현식·안재준·김혁 등 신예 선수들의 기량도 뛰어나 장 감독은 흡족한 표정이다. 눈에 띄게 기량이 좋아지고 있는 혼혈선수 강수일, 2년차 김정현에게도 기대를 건다.

괌=정영재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