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속에서>신세대와 침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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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말하는 일을 업으로 삼는 사람일수록 말에 대한 피로나 무력감을 느낄 때가 많다.교사도 그런 직업중 하나다.정해진 수업을 통해 좀더 많은 지식을 설명해내야 하고 같은 말을 몇번이고 반복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때로는 침묵이 필요하다.침묵은 말의 무게를 회복해주고말하는 이의 자존(自尊)을 되찾아준다.이러한 생산적 휴식의 의미외에도 침묵 자체가 어떤 웅변보다도 강력한 메시지를 함축할 때도 있다.전하고 싶지만 쉽게 언어화할 수 없는 묵직한 생각과느낌들,그것을 어찌 몇마디 말로 대신할 수있을 것인가.또한 말해버릴 것을 차라리 말하지 않음으로써 상대방에게 스스로 더 많은 것을 깨닫게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오늘의 교실에서는 침묵이 사라졌다.입시 위주의 교육현실이 그것을 용납하지 않을 뿐 아니라 교육을 받는 새로운 세대가 침묵의 의미를 받아들일 줄 모르기 때문이다.
어떤 교사가 교실에서 5분간 침묵했다면 그는 5분간 무용한 존재가 되고만다.학생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다가 이내 제 할일을 시작한다.그 어색한 순간을 농담이나 부스럭거림으로라도 메우려 든다.해마다 3월이면 신입생이 들어오는데 새로운 세대에 대한 기대 못지않게 당혹감도 크다.그들은 솔직하고 당당하며 자유롭다. 그런데 그 빛나는 개성을 감싸고 있는 기질은 대체로 조급성과 산만성이다.눈에 보이지 않는 것,귀에 들리지 않는 것은 보려고도 믿으려 하지도 않는다.그들에게는 침묵이 단순한 공백에 불과하다.그래서 그들은 끊임없는 자극과 유머가 넘치 는,마치 텔레비전 프로그램과 같은 수업을 원한다.
그런 학생들에게 나라는 존재를 들이대며 언어이상의 무언가를 전하려는 것이 뒤떨어진 꿈에 불과한 것일까.
나는 오늘도 교단에,새로운 세대앞에 선다.신세대는 침묵을 두려워하고 나는 그들의 가벼움을 두려워하는지도 모른다.종이 울리면 많은 말을 통해 그들과 만나겠지만 이것 또한 말해주리라.침묵을 견딜 수 있는 세대만이 정작 말이 필요할 때 침묵하지 않는 용기를 지닐 수 있다는 것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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