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학생 질문조차 못 알아들었지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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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호 06면

글로벌 환경에서 외국의 교사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가르치는 교사가 있다. 부산 남일고 수학담당 선경아(33·여·사진) 교사. 그는 지난해 7월 3년 계약으로 미국 시카고의 본 스튜번고교로 떠났다. 국내 교사가 외국의 학교에 파견돼 영의로 강의하는 것은 선씨가 처음이다.

美 고교서 영어로 수학 가르치는 선경아씨

선씨는 한 학기 동안의 수학 보조교사(co-teacher)를 거쳐 지난달 말부터는 단독으로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영어에 어느 정도 자신이 있고, 영어를 더 잘해보고 싶어 미국으로 건너갔지만 미국식 발음과 악센트에 적응하는 것이 쉽진 않았다. “학생들이 시간마다 질문을 쏟아내요. 한 교실에 23명의 학생이 있는데 미국인은 30% 정도이고 히스패닉 아메리칸이 30%, 아프리칸 아메리칸이 30%, 아시아계가 10%죠. 그런데 억양이 모두 달라 질문조차 알아듣기 힘들 때가 많아요. 옆에 앉은 학생에게 물어봐서 간신히 대답을 해줘요.” 발음도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다. 미완성(incomplete)이란 단어를 발음했는데 한 학생이 악센트가 틀렸다며 고쳐줘 가슴을 쓸어내린 적도 있었다.

선씨가 맡은 수업은 한 주에 15시간. 수업을 원활하게 이끌기 위해 수업이 없는 시간이면 다른 학교 교과서 3~4개를 함께 펴놓고 교재를 연구한다. 가능한 한 정확하고 세련된 표현을 익히기 위해서다. 유튜브 등 미국 교육사이트에서 우수한 동영상을 다운받아 받아 적고 외운다. 한 시간짜리 수업을 준비하는 데 다섯 시간은 투자한다. 매주 75시간 이상 교재와 씨름하는 것이다. 선씨는 “내가 고등학생 때 공부할 때보다 요즘 더 열심히 한다”고 말했다. 그는 노트북도 항상 갖고 다닌다. 부족한 영어 능력을 메울 수 있는 시각자료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다.

선씨는 “외국어를 익히는 데는 왕도가 따로 없다”고 말한다. 한국에서 논의되고 있는 몰입교육에 대해선 “나도 하기 전에는 두려움이 많았는데 해나가면서 길이 보이기 시작했다. 학생들도 못 받아들일 것 같지만 한국 학생들이 기본적으로 영어실력을 갖추고 있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부산대 사대 출신으로 외국 경험이 전혀 없던 선씨는 미국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6개월을 독학으로 공부했다. 교육청의 연수 과정에 수학교사를 위한 영어 연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학교 도서관에 남아 영어자료를 뒤적여가며 ‘기초부터’ 공부했다. 영어 회화학원을 다니고, 영어신문도 탐독했다. 이 같은 노력 덕분에 파견교사를 선발하기 위한 시카고교육청의 영어 구술시험에서 유창한 영어로 교육청 직원을 사로잡을 수 있었다.

요즘 선씨는 한국의 수학 지도방법을 알리는 데에도 힘을 쏟고 있다. 그는 “일리노이주에서 스튜번고교의 수학 순위가 뒤처져 교사들이 순위를 끌어올리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있다”며 “반년 동안 동료 교사의 수업을 참관한 것을 바탕으로 한국식 교육방법을 조언해 주는 것에 대해 고마워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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