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Story] ‘매쿼리 리포트’ 코스피 습격사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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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박용석 기자 parkys@joongang.co.kr

A자산운용 펀드매니저 K씨는 지난달 30일 아침 가벼운 마음으로 딜링룸에 들어섰다. 미국의 추가 금리 인하 기대감에 몇 시간 전 뉴욕 증시도 올랐다. 덕분에 코스피 지수는 물론 중국·홍콩·일본 증시도 오름세로 출발했다. 연초 주가 급락을 주도한 외국인의 팔자 공세도 한결 누그러졌다. 그러나 안도감도 잠시. 오전 11시를 지나자 코스피지수가 곤두박질하기 시작했다. 현대중공업을 비롯한 조선주가 급락하고 있었다. 외국인이 다시 조선주 파나? 그러나 컴퓨터 화면엔 외국인은 사자 편으로 나타났다. 오히려 국내 기관투자가, 특히 연기금이 조선주와 철강주를 마구 쏟아냈다.

도대체 이유가 뭘까. 딜링룸은 혼란에 빠졌다. 모두 안테나를 세우고 정보 수집에 나섰다. 딱 부러지는 이유를 찾기 어려웠다. 시장엔 온갖 추측이 난무했다. 오후가 되자 조선주에 ‘묻지마’ 팔자까지 나왔다. 대장격인 현대중공업은 거의 하한가까지 밀렸다.

그즈음 시장의 시선은 호주계 증권사 매쿼리로 쏠렸다. 매쿼리는 이날 오전 국내 대표 조선주 4개 종목의 목표주가를 한꺼번에 최고 70%나 떨어뜨린 보고서를 냈다. 4곳 모두 ‘시장수익률 하회’란 매매 의견도 붙인 상태였다. 빨리 팔라는 뜻이었다. 마침 중국 관련 악재가 쏟아지며 중국·홍콩·일본 증시도 급락하자 매쿼리 보고서의 위력은 더욱 커졌다. 결국 이날 코스피지수는 8개월 만에 1600 아래로 밀리고 말았다.

메리츠증권 윤세욱 리서치센터장은 “한 외국계 증권사 보고서 때문에 30일 조선주가 폭락했다고 설명하는 건 무리”라며 “다만 시장 불안심리를 자극한 측면은 있었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는 “국내 증시가 작은 빌미에도 민감하게 반응할 만큼 취약한 상태임을 보여준다”고 덧붙였다.

외국계 애널리스트의 보고서는 국내 증시에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할 때가 많다. 그러나 외국인이 팔자의 주도세력이 될 때는 사정이 달라진다. 외국계 증권사의 보고서를 더 눈여겨본다는 외국인 투자자들의 관행 때문이다. 매쿼리 보고서도 미묘한 시기에 나왔다.

연초 외국인은 조선주를 집중적으로 팔아치웠다. 지난해 주가가 많이 오른 데다 미래에셋 펀드가 많이 보유한 종목이어서 미래에셋이 물량을 받아줬기 때문이다. 반면 미래에셋을 따라 조선주를 샀던 국내 기관투자가는 팔 기회를 놓친 상태였다. 조선주를 계속 들고 가느냐 마느냐의 기로에 서 있던 차에 매쿼리가 목표주가를 확 낮춘 보고서를 내자 불안감이 증폭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30일 거래 내용을 뜯어보면 외국인은 오히려 조선주를 샀다. 국내 연기금이 많이 팔았다. 매쿼리 보고서는 외국인보다 국내 기관투자가에 더 큰 영향을 줬다는 뜻이다.

매쿼리가 조선주의 목표주가를 낮춘 이유는 세 가지다. 유럽의 선박 금융시장이 위축됐고, 이 때문에 선박 수주가 감소할 것이며, 강판 값이 올라 원가 부담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조선사의 실적은 2010년을 정점으로 내리막을 탈 것으로 봤다.

국내 애널리스트들은 목표주가는 조정할 수 있지만 한 번에 60~70%씩 낮춘 건 납득하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신영증권 조용준 리서치센터장은 “국내 조선사는 이미 3~4년치 일감을 확보하고 있어 수주가 준다고 이익이 감소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증권 윤필중 연구위원은 “국내 조선사는 이미 벌크선이나 컨테이너선을 주로 건조하던 시대에서 해양시추선 제작은 물론 다른 중공업으로도 사업을 다각화했다”며 “수주가 준다고 목표가를 몇 달 만에 60~70%씩 낮추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NH증권 안지현 연구위원도 “매쿼리의 지적사항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나온 얘기며, 이를 반영해 조선주가 올 들어 이미 40% 안팎 떨어졌는데 여기서 30%가 더 떨어진다고 보는 건 지나치다”고 반박했다.

글=증권팀 , 일러스트=박용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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