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투자장벽? 한국 스스로 허물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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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데이비드 엘든(David Eldon)은 의외로 따뜻했다. 그러나 단호했다. 약속시간에 맞춰 한국시간 오전 5시에 그가 머물고 있는 쿠웨이트로 전화를 걸자 부드러운 목소리로 “잠은 좀 잤느냐?”고 묻다가도 자신의 주장을 펼 때는 이내 강한 목소리로 변했다. 대통령직 인수위의 국가경쟁력특위 공동위원장에 임명된 엘든. 한국에서 외국인으로는 처음 인수위 고위직을 맡은 인물이다. 국제금융인인 그에게 한국은 발전 가능성이 큰, 바꿔 말하면 아직 발전이 필요한 부분이 많은 나라다. 제대로 된 영어 메뉴 하나 없는 한국 식당이 불편하고 서운하다가도, 길을 헤매던 자신에게 다가와 안내를 해주려는 한국인들에게 진한 애정을 느낀다고 한다. 28일 그를 전화 인터뷰했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을 어떻게 보나.

“일을 해낼 줄 아는 사람이다. 한국이 외국 자본을 끌어들여 국제금융강국이 되고 싶다면 그 일을 실제로 해낼 수 있는 선견지명과 능력이 있는 사람이 바로 당선인이다. 서울시장으로 일할 때 청계천 프로젝트를 밀어붙이는 추진력과 의지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당시 그 사업에 대한 비판을 들으면서 홍콩 지하철 사업을 떠올렸다. 반대 목소리가 컸지만 오늘날 홍콩에선 이것 없이는 살기 힘들 정도다. 청계천도 마찬가지 아닌가? 용감하고도 훌륭한 결정이었다. 내가 그를 깊이 존경하는 이유다.”

-어떻게 인수위 고위직을 맡게 됐나.

“예전에 국제금융 분야 등에서 당선인을 도울 수 있겠느냐는 제안을 받고 그러겠다고 답한 적이 있다. 하지만 이렇게 중대하고 큰일을 맡으리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발표 몇 시간 전 홍콩의 집으로 전화가 걸려와 지명 사실을 알았다. 놀랐지만 매우 명예로운 일이라 생각했다. 여러 이유로 수락했는데,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더 큰 역할을 해야 한다는 믿음이 그중 하나다. 그런 변화를 꾀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바로 이명박 당선인일 거라고 생각했다. 내가 객관적이고도 독립적으로 일할 수 있다는 이유도 있다. 맡은 바 최선을 다하겠지만, 공동위원장이 내 직업은 아니다. 내 미래를 여기에 걸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최근 인수위에서 외국인 장관도 기용할 수 있다고 했는데.

“공동위원장을 제외하곤, 내게 어떤 자리도 제안해온 적이 없다. 나는 지금껏 여러 나라에서 일하면서 늘 그 나라의 손님이라고 느껴 왔다. 해당 국가의 법·문화·사업환경 등을 모두 이해해야 하고, 실수를 적게 하도록 신경 써야 한다. 중요한 건 외국인의 시각이 필요하다고 무작정 데려와선 안 된다는 점이다. 역할을 확실히 맡길 수 있을 때만 써야 한다.”

-한국에서 외국자본이 겪는 어려움을 타파해야 한다는 얘기를 여러 차례 했다. 구체적인 사례가 있나. 하락세에 있는 외국인 직접투자를 늘리기 위해 한국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직접 겪은 것을 포함해 많은 일화를 알고 있고, 국제사회와 비교했을 때 (외국인들 입장에서) 억울하거나 이해가 되지 않는 사례도 많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양쪽(한국과 외국)의 이야기를 모두 다 듣고 판단해야 할 문제다. 그러나 (외자에 대한) 장벽이 존재하는 게 사실이고, 이는 한국이 스스로 해결해야 할 과제다.(그는 이 대목에서 이전에도 여러 번 했던 ‘삼성이나 LG가 외국에서 벌어들인 돈을 한국으로 가져가지 못한다면 어떻겠는가’라는 반문을 했다)”

-‘대한민국’이라는 브랜드의 강점은 뭐라고 보나.

“한국은 항상 뭔가 한 가지 목표를 정해 놓고 돌진하는 의지력을 보여 왔다. 이는 다른 어디에서도 보지 못했던 것이다. 정말로 뭔가를 하려고 자세만 잡으면 실제로 그 일을 해낸다는 점에서 매우 긍정적이다. 그러나 지금 현재, 그런 한국이 브랜드로서의 가치가 있을까. 흥미로운 질문이고, 앞으로 논의되어야 할 필요가 있는 문제다.”

-개방이라는 문제에서 당신이 일하는 두바이와 한국은 다르다는 지적과 비판도 있는데.

“두바이는 열려 있고 한국은 닫혀 있다. 하지만 공통점도 있다. 잠재력이 있다는 거다.”

-새만금 간척지를 두바이처럼 개발해 보자는 주장이 있는데.

“일단 새만금에 직접 가봐야겠다.”

-당신이 투자 유치에 관여한다면 중동의 오일머니를 끌어들일 거라는 기대가 많다.

“한국 금융 산업에 도움이 된다면 자금의 출처를 따지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내가 중동에 아는 사람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투자자들에게 제시하는 조건이 좋지 않다면 어떤 투자도 유치할 수 없을 것이다.”

-도전을 즐긴다고 들었다.

“일부러 도전거리를 찾아 나서진 않지만 해야 할 경우 최선을 다한다. 인간이 모든 도전을 다 극복해낼 수는 없고, 중요한 건 최선을 다했는가 하는 점이다. 내 아이들에게도 (2남1녀) 성적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최선을 다해 공부했는지를 중시했다. 능력이 있는데도 노력을 안 했다면 매우 화가 난다.”

-일을 할 때는 어떤 스타일인가. 블로그에서 자신이 ‘너무도 독립적이어서 때론 어떤 이들은 내가 좀더 유연해졌으면 하고 바랐다’라고 적었던데.

“나는 항상 ‘남의 말에 귀 기울이는 사람(the listener)’이 되려고 노력한다. 과거 별명이 ‘심판(the judge)’이었는데, 항상 양쪽의 입장을 다 듣고 판단을 내렸기 때문이다. 이런 성격 때문에 때론 동료나, 심지어 상사의 생각과도 다른 결정을 내리기도 했다.”

-최근 인수위가 영어교육을 강조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자 논란이 일고 있다.

“수많은 한국 학생이 영어를 배우기 위해 유학 중이라고 들었는데, 한국에서 영어를 잘 가르칠 수 있다면 그것이 최선책 아닌가? 호주에선 일본어·중국어를 공교육에서 가르쳐 성공했다고 한다. 물론 중요한 것은 모국어를 등한히 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그러나 주요 외국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 큰 강점이다.”

전수진 기자

◇데이비드 엘든=영국 스코틀랜드 출신의 국제 금융인이다. 부모가 모두 군인이었으며, 아버지는 그가 태어나기도 전에 세상을 떠났다. 부사관인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왕립 요크 공작 군사학교를 중퇴하고 금융계에 뛰어들어 40년 가까이 중동과 아시아 지역에서 일해 왔다. 영국계 홍콩상하이은행(HSBC)의 아태지역 회장을 지내다 2005년 퇴임했으나 현재까지 두바이 국제금융센터(DIFC:Dubai International Financial Centre) 회장 등 여러 직함을 가지고 있다. 1993년 은행 관련 사업차 한국을 드나들기 시작했다. 2001년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이 주축이 돼 만든 서울국제경제자문회의(SIBAC) 총회에서 당선인과 인연을 맺었다.

인터뷰에서 자신에 대해 “노동자 계급(working class) 출신이지만 신분 개선의 기회를 얻는 행운을 누렸다”며 “인생에서 중요한 건 기회가 오면 허비하지 말고 잡아야 한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비서를 두지 않고 필요한 모든 건 직접 한다며, e-메일 답신은 물론 자신의 블로그(www.eldon-online.com)에 열흘에 한 번 정도 올리는 글도 직접 쓴다고 밝혔다. 대면 인터뷰를 요청했더니 이번 주에 중동·아시아·아프리카·유럽을 누비며 오전과 오후에 체류하는 나라가 다를 정도로 바쁜 일정표를 보여 주며, 전화로 하자고 역제안을 했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한국 생활의 불편을 영어를 못 하는 한국인 탓으로 돌리는 많은 외국인과는 달리 “내가 한국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것, 또 한국어를 못 한다는 것”도 이유라고 말하는 그의 사려 깊은 태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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