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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자존심 건 명차 '제네시스' 기자가 직접 타보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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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새로운 명차 브랜드의 신호탄일까, 현대차의 최고급 차에 머무를까?”

1월 8일 출시된 현대차의 기함 제네시스(GENESIS)는 렉서스ㆍ인피니티 등 일본 대중차의 고급 브랜드 도전이 아닌 기존 현대차 브랜드로 출시됐다.

국내뿐 아니라 이달 14일 개막한 미국 디트로이트 모터쇼에서도 현대차 마크를 달고 나왔다. 국내 판매가격이 4000만∼5300만원인 제네시스의 미국 판매가격이 얼마에 결정될지가 남은 화제다. 현재까지 알려진 내용은 3만달러 전후에 기본 모델 가격이 정해진다는 정도다.

기자가 확인한 바로는 2만8000달러가 기본 가격일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 웬만한 옵션을 추가하면 통상 가격은 3만2000∼3만4000달러에 형성될 것으로 보인다.

한 등급 아래인 그랜저(TG)의 미국 판매가가 2만6000달러인 점에 비하면 큰 가격 상승폭은 아니지만 소비자에겐 부담스런 가격대다.

3만달러대 자동차를 고려하는 미국 고객에겐 가격경쟁력보다는 브랜드가 먼저다. 미국 시장은 중소형차 뿐 아니라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차량도 배기량과 크기에 따른 세그먼트마다 경쟁 차종이 수십 개씩 존재한다. 성능이 조금 좋아졌다고 함부로(?) 가격을 올리지 못하는 이유다. NF쏘나타가 성능과 품질 개선을 이유로 미국서 15% 가격을 올렸다가 결국 할인판매로 판매를 보전했던 전철을 밟아서는 안된다. 이런 점에서 국산차 신차가 연간 10대도 나오지 않는 국내 시장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미국에서 현대차 판매점을 가본 사람들은 제네시스의 도전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외곽지역 허름한 곳에 자리한 현대차 지점에 어떤 고객들이 와서 차량을 구매하는지 말이다. 이런 점에서 제네시스의 한 차원 높은 품질과 성능에 불구하고 난관이 예상되는 점이다. 그래서 가격을 쉽게 올릴 수 없다는 점이다. 가격 메리트마저 사라진다면 미국에서 판매경쟁력을 갖기 어렵다는 얘기다. 이번 만큼은 이익이 적도라도 할인판매를 하면 안된다.(이 부분도 2편에서 논하겠다)

2004년 현대차가 제네시스 개발에 착수하면서 가장 큰 고민은 ‘새로운 고급 브랜드의 런칭’이었다. 파워 트레인(엔진 등 동력계통)에 자신감을 갖은 현대차는 이현순 연구개발부문 사장을 필두로 새로운 브랜드 런칭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 사장은 현대차 엔진 개발의 산증인이다.

“파워 트레인은 세계 최고인 벤츠ㆍBMW에 비교해도 크게 뒤질 게 없다. 디젤 부분에선 일본 업체보다 오히려 우리(현대차)가 우수하다.” 이 사장은 여러 번 기자에게 파워 트레인에 대한 자신감을 역설하곤 했다. 현대차의 품질 수준도 이미 세계 선두권이다. 그렇다면 새로운 명품 브랜드에 대한 도전은 해 볼만 한 것 아닌가.

문제는 막대한 마케팅 비용이다. 1989년 도요타가 렉서스 브랜드를 내놓으면서 미국 시장에 퍼부은 마케팅 비용만 20억달러(약 1조9000억원)에 달한다. 지금 시세로 계산해보면 족히 5조원에 달할 게다. 여기에 판매 채널(딜러)을 따로 선정해야 한다. 주로 1만달러 대 차량을 파는 현대차 미국 전시장에서 3만달러가 넘는 차를 팔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또 제네시스 차종 한 가지로는 별도 채널을 선정하는 데 무리도 따른다. 예를들면 렉서스 RX350같은 SUV나 엘란트라 크기의 고성능 고급차 이런 것 등 최소 두 세가지 모델이 있어야 딜러들이 먹고 살수 있다.

현대차는 지금 그만한 자금을 마케팅에 쓸 여유가 없다. 유럽ㆍ미국ㆍ중국에 건설했거나 하고 있는 신공장 투자에도 바쁜 몸이다. 더구나 현대제철 고로 사업이 한창이다. 파워 트레인과 품질에 자신이 있지만 이런 이유로 2006년부터는 ‘현대차의 명품 브랜드 등장은 2010년 이후로 연기됐다’는 설이 기정사실화됐었다.

이처럼 제네시스는 현대차가 명차 반열에 오르기 위해 공을 들인 차다. 마케팅이나 자금 등 다른 여건만 충족됐더라면 비스듬한 ‘H’자 마크대신 새로운 엠블럼을 봤을지도 모른다. (국내에선 벤틀리를 닮은 엠블럼을 달고 나왔다. 물론 미국에선 현대차 엠블럼 그대로다. 국내 소비자에겐 현대차라는 각인이 명확해 슬쩍 새로운 엠블럼을 달았지만 엄청난 광고비를 투입하지 않아도 된다는 판단에서다.)

제네시스는 우선 국내 시장에서 수입차 사냥에 나선다. 럭셔리한 실내 인테리어와 탁월한 정숙성, 국내 소비자가 좋아하는 부드러운 가속력이라는 특징을 봐선 유럽차보다는 일본차가 경쟁자다. 혼다 어코드, 렉서스 ES350 등 일본 수입차라는 먹이를 잡을 날카로운 부리와 눈을 갖은 독수리로 변신하고 있다. 9월께 출시될 닛산 알티마와도 좋은 경쟁이 예상된다.

특히 신형 어코드3.5ℓ(3990만원)는 제네시스의 먹이감이 될 가능성이 높다. 디자인이나 마무리 품질, 성능 등을 비교했을 때 제네시스가 뒤질 게 없다. 오히려 실내 크기나 모든 부분에서 앞선다. 역으로 가격이 제네시스가 5∼10% 비싸다는 것이다.

ES350은 핸들링에서 제네시스보다 못하다.(상세한 부분은 2편에서). 감성품질이나 디자인 균형 등에선 제네시스보다 일부 앞선 점이 있다. 국내 소비자가 좋아하는 골브 백 4개가 들어가는 트렁크나 정숙성, 많으면 많을 수록 좋다는 편의장치(실제 이런 편의장치를 절반 이상 사용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등 물량 면에선 ES350보다 우위다. 가격도 10∼15% 정도 싼 점도 렉서스 킬러가 예상되는 점이다.

미국에선 올 4월 판매를 시작한다. 이후 좋은 평판과 함께 월 2000대 이상 팔릴 경우 제네시스는 현대차에 새로운 명차 브랜드에 대한 자신감을 가져다 줄 아이콘으로 거듭날 게다. 그럼 제네시스는 어떤 차일까.

스포츠 세단을 추구하는 후륜 구동

제네시스의 동력 계통 가운데 가장 큰 특징은 후륜 구동이다. 스포츠 세단을 표방하려면 아무래도 앞뒤 무게 밸런스가 잘 맞는 후륜 구동이 아니고선 어렵기 때문이다. 전륜 구동은 연비가 좋고 눈길 등에 유리하지만 무게 밸런스가 앞쪽에 치우쳐 코너링에서 상대적으로 뒤진다.제제시스는 이런 점을 고려해 배터리도 트렁크 쪽으로 옮겼다.

엔진은 국내 모델의 경우 V6 3.3리터, 3.8리터 람다(λ)엔진을 달았다. 이 엔진은 이미 그랜저TG에 사용돼 정숙성과 부드러운 가속력으로 높은 평가를 받은 엔진이다. 특히 정숙성에선 도요타와 견줘도 뒤질 게 없다. 하지만 BMW 등 유럽차와 견줬을 때는 중고속에서 순간적으로 치고 나가는 토크에서 뒤진다. (최고마력에 집중하는 현대차의 특성이다. 토크와 마력 곡선을 비교하면 분명한 차이가 드러난다.)

시속 80㎞ 이상에서 엑셀을 급격히 밟았을 때 느껴지는 가속감이 상대적으로 떨어진다. 미국처럼 널직하고 잘 닦인 고속도로를 달리는 데 안성맞춤이지만 구불구불한 유럽에는 잘 맞지 않는다. 어쨌든 국내 자동차사에 한 획을 그은 엔진이기에는 틀림없다. 추가로 하나를 더 지적한다면 유럽차 엔진보다 상대적으로 길이가 길다. 이런 점은 외관 디자인에 상당한 제약 사항이다.

미국 모델의 경우 에쿠스 후속 차종의 기본 엔진으로 자리 잡을 신형 V8 4.6리터 타우(τ)엔진이 달렸다. 최고 380마력을 내는 대형 엔진이다. 기본 컨셉트는 정숙성과 부드러움이라는 점에서 람다 엔진과 흡사하다. 아직까지 양산을 중시하는 현대차이기 때문에 독특한 성능보다는 균형을 맞춘 보편적인 엔진 개발에 중점을 두고 있는 셈이다. 타우 엔진은 불행하게 고유가 시대에 태어났다. 그런 점에서 과연 몇대나 팔지 걱정이다. 타우 엔진은 2,3년후 현대차가 내놓을 미국형 픽업트럭에 사용하는 기본 엔진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에 시승한 차는 3.8ℓ 모델이다. 국내에서도 인지도가 높을, 미국에서 기본 모델 가능성이 점쳐지는 기함이다.

기존 현대차로선 생각할 수 없는 뛰어난 핸들링

제네시스의 변신폭이 가장 큰 부분은 핸들링이다. 여기엔 현대차 연구소의 집념이 서려있다.

핸들링과 승차감을 좌우하는 앞뒤 서스펜션은 후륜 구동 명차에 사용하는 멀티링크(5링크)를 채택했다. 지난해 나온 렉서스 LS460이후 세계 두 번째다. 제네시스가 예상대로 지난해 상반기 등장했다면 현대차가 자동차 기술 개발 역사에 한 점을 찍었을 것이다. 특히 캠리의 맥퍼슨 서스펜션을 그대로 사용하는 ES350과 핸들링을 비교하면 제네시스의 성능을 확연히 느낄 수 있을 게다.

상대적으로 유럽차에 비해 뒤졌던 강성도 엄청 좋아졌다. 슬라럼 등 심한 코너링에서 차체가 휘청거릴 경우 미국 전문가 테스트에서 망신을 당하기 쉽상이다. 차체 설계의 노하우가 그대로 전사(傳寫)되는 차체 강성에 대해 현대차는 이번만큼은 유럽차에 뒤지지 않도록 심혈을 기울였다. 여기에 중량까지 엄청 줄였다. 성능은 높이고 중량을 줄이는 것은 두 마리의 토끼다. 자동차 개발분야에 종사하시는 분들은 쉽게 알게다. 1㎏을 줄이기 위해 얼마나 애를 쓰는지... 제네시스 3.3ℓ의 경우 차체 중량은 불과 1715㎏이다. 일본차에 육박하는 수준이다. 그래서 연비가 10.0㎞/ℓ로 두 자리수를 기록했다. 이만한 배기량에 이 정도 연비를 내는 차는 수입차를 합해 앞에 내세울 차가 몇 대 없다.

적어도 제네시스는 파워트레인(엔진 분야) 보다는 섀시와 차체 설계에서 현대차의 이미지를 바꾼 차다.

NF쏘나타 차체를 개발한 국내 최고의 차체 전문가인 남양연구소 이언구 부사장의 열정이 녹아있는 제네시스는 비틀림 강성에서 기존 국산차에 대한 평가를 뒤집었다. 아우디와의 충돌 테스트에 대한 자신감이 그런 경우다. 4000만원대 세단에 ‘안전함’이라는 이미지 없이 판매에 나설 수는 없다. 차체 강성의 향상은 개발 1순위 목표였다. 다음 편에서는 디자인과 성능에 대해 중점적으로 다뤄 보겠다.

중앙일보 김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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