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 전까지 작품 구상한 내 남편 남준과 아직도 예술을 얘기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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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지난해 가을 10년만의 개인전을 마치고 백남준 전기를 쓰기 시작했어요. 끝낼 수 있을지….”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1932~2006)의 반려 구보타 시게코(久保田成子·71)는 간간이 남편과의 과거 얘기를 하며 눈물을 닦고 한숨을 쉬었다. 백남준 2주기를 이틀 앞둔 27일 오전,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다. 그는 백남준 2주기 행사 참석차 전날 밤 뉴욕서 서울로 날아왔다. 류머티즘과 당뇨를 앓아 지팡이를 짚은 채 겨우 걷는 땅딸막한 일본인 할머니. 그는 과거뿐 아니라 미래도 백남준으로 채우고 있었다. 앞으로의 작품 활동 계획, 남편의 전기 집필 계획을 풀어냈다. 그런 면에서 1996년 쓰러진 뒤에도 휠체어에 몸을 싣고 세계를 누비며 죽기 전까지 작품 구상에 몰두했던 남편을 닮았다.

그는 기자를 만나자마자 “벌써 2년 전 일”이라고 운을 뗐다. 지난해 가을 뉴욕의 마야 스탕달 갤러리에서 연 개인전 ‘백남준과 함께 한 내 인생’(My Life with Namjune Paik) 도록에 실린, 74년 뉴욕에서 남편과 퍼포먼스를 벌이던 사진을 가리키면서 “남준, 잘 생겼죠? 나는 젊었고”라고도 했다. 대화 도중 문득문득 먼 곳을 바라보는 그는 남편을 꼭 ‘남준’이라고 불렀다.

 -백남준이 죽은 지 2년이다.

 “지난해 12월, 갑자기 추워진 날이었다. 뉴욕 스튜디오 창 밖을 내다보며 옛날 생각을 했다. 그날 밤 마이애미 해변에서 남준과 함께 있는 꿈을 꿨다. 다음날 바로 마이애미로 갔다. 거기서는 또 남준이 독일에 있는 꿈을 꿨다. 예전처럼 지금도 그가 곳곳을 여행 중인 것 같다.”

 구보타는 “남준이 나를 따라 한국으로 왔으면 좋겠다”며 미소 지었다. 그는 뉴욕 소호의 3000㎡(약 900평)짜리 작업실 겸 자택에서 혼자 살고 있다. 부부가 74년부터 함께 지내던 공간이다. 백남준은 쓰러진 뒤 겨울이면 추위를 피해 마이애미에서 지냈다.

 -30여 년을 함께 해 온 세월이다. 아이도 애완견도 없이 둘 뿐이었다. 외롭지 않나.

 “다들 그렇게 묻는다. 가족 없이 둘만 지내는 삶에 익숙해 외롭지 않다. 난 예술가다. 예술가의 삶은 원래 그렇다. 내게는 작업이 있고 남준과의 추억이 있다. 난 아직도 그와 이야기한다. 작업실의 공기, 맨해튼의 바람에서도 그를 느낄 수 있다. 이번에 한국에도 그와의 기억을 안고 왔다.”

 -10년 만에 연 개인전이었다.

 “96년 남준이 쓰러진 뒤부터 나는 간호사였다. 아픈 남준에겐 내가 필요했다. 작품에 집중할 수 없었다. 97년 뉴욕 휘트니미술관 개인전이 거의 마지막이었다.”

 한국에서는 ‘백남준의 일본인 아내’로 더 유명하지만 그는 백남준과 함께 활동한 전위예술가였다. 63년 도쿄에서 백남준의 퍼포먼스를 처음 봤고, 다음해 뉴욕에 와서 ‘플럭서스’(Fluxus) 운동에 참여했다. 60, 70년대 독일·미국·일본 등지서 벌어진 국제적 전위예술운동인 플럭서스엔 조지 마키우나스·요셉 보이스 등 당대 쟁쟁한 예술가가 참여했다. 구보타는 65년 가랑이 사이에 붓을 매달고 붉은 물감으로 그림을 그리는 강도 높은 퍼포먼스를 펼치기도 했다. 여성의 알몸에 물감을 묻혀 그림을 그리던 이브 클랭을 비판한 패러디였다.

2년 전 백남준 타계 후 그는 뉴욕과 서울을 오가고 있다. 백남준의 추모재, 추모사업과 관련해서다.

 -몸이 불편한데 장거리 여행이 잦다.

 “남준도 그랬다. 난 휠체어를 탄 그를 이끌고 2000년엔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서, 2002년엔 빌바오 구겐하임으로, 2004년엔 베를린으로 다녔다. 남준은 그렇게 활발히 세계를 다니며 전시회를 열었고, 죽기 전까지 작품을 구상했다. 그는 긍정적이었고, 자기가 죽을 거란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 역시 남편의 죽음을 생각 못했다는 듯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았다.

 -2주기인데 조촐한 느낌이다.

 “서운한 점이 많다. 남준은 가난한 예술가였다. 외국인이 뉴욕서 예술가로 정착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남준은 해냈다. 그가 유명해지고, 죽은 뒤에야 ‘남준 알아요’(그는 이 대목을 한국말로 했다)라는 이들이 많이 나타난다. 지난해엔 꽃으로 장식된 분향소에서 추모 행사가 열렸지만, 중요한 것은 돈이 아니라 마음이다.”

 -계획은.

 “지난해 전시한 남준의 오마주 작업에 이어 작품활동을 계속할 생각이다. 독일도 가보고 싶다. 남준과의 추억이 깃든 향수의 장소다. 그리고 남준에 대한 전기를 쓰고 있다. 언제 끝낼지는 모른다. 뉴욕은 날씨가 궂어 마음이 자주 가라앉는다. 그럴 때 클래식 음악을 틀어놓고 카푸치노를 앞에 두면 글이 써진다. 이제 겨우 1장을 마쳤다. 우리가 어디서 어떻게 만났는지다. 일본에서는 오래 전 여류 작가가 쓴 『겐지이야기』가 유명하다. 여성은 훌륭한 이야기꾼이다. 『남준이야기』를 차근차근 쓸 생각이다.”

글=권근영 기자, 사진=김경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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