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맘대로 사면 새 정부서는 어렵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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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임동원·신건 두 전직 국가정보원장은 1월 1일 대통령 특별사면을 받았다. 김대중(DJ) 정부 시절 국정원의 불법 도청을 지시·묵인한 혐의로 유죄가 확정된 지 불과 나흘 만이었다. 같은 날 박지원 전 문화부 장관, 한화갑 전 의원도 특사 명단에 포함됐다.

2002년 병풍(兵風)의 주역이던 김대업씨는 당초 청와대의 사면 대상자 명단에 포함됐다가 법무부의 반대로 제외됐다.

이 때문에 노무현 대통령의 임기 말 특별사면을 놓고 비난 여론이 거셌다. 정성진 법무부 장관도 “(신년 특사에는) DJ 정부 빚 갚기 성격이 있다”고 지적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부터는 이런 식의 ‘보은(報恩)성 사면’이나 ‘봐주기 사면’이 어려워진다. 법무부는 27일 사면 심사 과정에서 특별사면 및 복권·감형 대상자별 사면심사의결서를 사면 즉시 공개하도록 하는 사면법 시행령·시행규칙을 입법예고했다. 이번의 시행령·규칙 제정은 지난해 12월 21일 민간인 4명 이상이 참여하는 ‘9인 사면심사위원회’를 두도록 사면법이 개정된 데 따른 후속 조치다. 심사 과정이 투명하게 공개됨에 따라 사면심사위원회에서 부적정 의견이 나온 사람을 대통령이 무리하게 명단에 포함시키기가 부담스러워졌다.

사면심사위원회는 특별사면의 적정성을 심사한 결과를 토대로 ‘적정하다’고 판정한 대상자는 사면 즉시 심사 결과를 공개키로 했다. 법무부는 특별사면을 시행한 지 10년 뒤 다수 의견과 일치하지 않는 개별 위원들의 의견까지 포함한 회의록을 모두 공개하도록 했다. 그러나 이번 시행령은 ▶사면심사위원회가 ‘부적정’ 결론을 내린 사람은 빼고 ‘적정’ 의결서만 공개키로 한 점 ▶그나마 위원회가 비공개를 결정할 수 있다는 점 ▶소수 의견은 묻힐 수 있는 점은 논란이 될 전망이다.

한상희 건국대(법학) 교수는 “특별사면 절차가 투명해졌다는 점에서 진일보했지만 대통령이 사면심사위원회의 의결을 따르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선 자의적 행사 여지는 남아 있다”며 “사법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는 특별사면은 자제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

정효식 기자

◇특별사면=대통령이 특정인에 대해 형의 집행을 면제하거나 유죄 선고 효력을 없애는 조치. 국회 동의를 받지 않는다는 점에서 국회 동의를 거쳐 특정 범죄에 해당되는 모든 범죄인의 형의 선고 또는 공소권을 소멸시키는 일반사면과는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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