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위·금감원 ‘밥그릇’ 싸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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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금융시장에서 재정경제부·금융감독위원회·금융감독원은 ‘세 시어미니’로 통한다. 이번 정부조직 개편에서 재경부는 시어머니 자리(법령의 제·개정권)를 신설되는 금융위원회에 넘긴다. 그러자 나머지 두 시어머니가 주도권 싸움을 벌이고 있다.

 금감위(사무국)는 공무원, 금감원은 준공무원 신분의 민간인들로 구성돼 있다. 홈페이지 도메인도 금감위는 정부기관을 의미하는 ‘go’를, 금감원은 민간조직을 가리키는 ‘or’을 사용한다. 서울 여의대로 97번지의 같은 건물, 같은 브리핑룸, 같은 구내식당을 이용하면서도 대표 전화번호는 따로 쓴다.

 지난 10년간 ‘한 지붕 두 가족’치곤 비교적 화목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금감위는 자체 인력이 부족해 금융사 인허가, 감독 규정의 제·개정 권한을 사실상 금감원에 넘겼다. 금감원도 독자적인 결정을 삼갔다. 금감위원장이 금감원장을 겸임해 ‘아버지’가 같다는 점도 화합에 한몫 했다. 그러나 정부조직 개편안에 따라 화합은 깨졌다. 검사권을 제외한 금감원의 권한은 모두 금융위로 넘어가고, 금융위는 금감원에 대한 인사권을 장악하는 쪽으로 기울자 금감원이 강하게 반발한 것이다.

 금감원 직원들은 비상대책위원회를 만들어 국회 앞에서 항의시위를 하고,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에게 탄원서를 제출했다. 지난주 김용덕 금감위원장 겸 금감원장이 비대위 해체를 지시했지만 먹혀들지 않았다.

 금감위는 느긋한 입장이다. 조직 개편 관련 법안은 재경부가 만들었으니 금감원과 직접 마찰을 빚을 이유가 없다는 자세다. 금감위 공무원들은 한결같이 감독 규정 제·개정권을 국가공무원의 고유 권한으로 보고 있다. 금감원에 대한 인사권을 신설되는 금융위가 행사하는 것도 당연하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금감원 직원들은 금감원이 금융위 공무원의 하위기관으로 전락한다고 반대하고 있다.

 금융 회사들은 두 기관의 대립을 ‘밥그릇 싸움’쯤으로 본다. “대통령직 인수위가 금감위·금감원의 인원 감축안부터 먼저 발표하라”고 주문하는 이들도 있다. 한 시중은행 법규 담당자는 “두 기관 모두 ‘권한이 조직의 힘이자 생명줄’이라고 생각하는 구태에서 못 벗어났다”고 말했다. 한 증권사 상품 개발 담당자는 “권한을 누가 지니든 우리에겐 똑같다”며 “같은 얘기를 금감위와 금감원에 반복하던 폐단을 없애는 게 선결 과제”라고 지적했다.

김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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