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인수위 과욕’ 탈날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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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나비효과’.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나비 한 마리가 날갯짓을 하면 한 달 뒤 미국 뉴욕에서 태풍이 발생할 수 있다는 과학 이론이다. 요즘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하는 일이 딱 그렇다.

 대표적인 게 영어교육 개편안이다. 대입 수능 영어시험을 말하기·듣기 위주의 ‘한국형 토플(TOEFL)’로 대체하겠다는 인수위 발표가 나오자 사교육계는 환호했다. 시험 준비를 공교육이 감당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반면 학부모들은 “이젠 조기유학을 보내야 하나”라며 한숨지었다.

 다시 점화된 군 가산점제 부활 논란도 그렇다. 한 인수위원이 군부대를 방문한 자리에서 “군 가산점제를 짚어 보겠다”고 말한 게 발단이 됐다.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예비역 아저씨’들과 ‘골수 페미(니스트)’들은 인터넷 공간에서 전쟁을 시작했다.

 정권교체로 탄생한 새 정부가 들어서는 마당에 새 정책들이 쏟아지는 건 당연하다. 새 정책이 야기하는 혼란은 일종의 성장통일 수 있다. 문제는 통증의 유발 주체가 새 정부가 아닌 인수위라는 점이다. 인수위는 정권 인수를 위한 시한부 기구다. 대통령직인수법에도 그 역할이 ‘새 정부의 정책 기조를 설정하기 위한 준비’로 규정돼 있다. 따라서 ‘인수위=새 정부’라는 등식은 성립되지 않는다. 당연히 인수위나 인수위원이 내놓은 정책이나 발언 모두를 새 정부가 책임져야 하는 게 아니다.

 환호했던 학원장과 시름 깊던 학부모의 입장은 새 정부가 출범해 입시정책에 손을 대기 시작하면 얼마든지 뒤바뀔 수 있다. 재향군인회와 여성단체의 표정도 언제 바뀔지 모른다. 온 나라를 뒤흔든 태풍이 나비 한 마리의 무의미한 날개바람에 불과했음을 깨닫게 될 수 있는 것이다.

 1993년 김영삼 대통령 당선인의 인수위에서 활동했던 전병민씨는 지난 대선 직후 “인수위는 공약에 있던 내용이라도 비현실적인 건 폐기하는 게 옳다”고 조언했다. ‘한건주의’를 경계해야 한다는 충고다. 하지만 현재 인수위는 선배의 충고를 무시하고 있다. 오죽하면 한 인수위원이 “인수위 일부 관계자는 새 정부 장관이라도 되는 양 정책을 발표하며 ‘오버액션’하고 있다”고 ‘자아비판’ 했을까.

 24일 인수위 간사단회의에서 이경숙 위원장이 “인수위가 겸허한 자세로 처음 시작할 때 모습으로 끝까지 임해 정권교체를 무난히 이뤘으면 한다”고 말한 것은 그래서 다행스럽다. 인수위가 그 말대로 더 이상 ‘오버’하지 않을지 지켜볼 일이다.

남궁욱 정치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