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SBC, 외환은행 인수 속도낼 듯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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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영국계 은행 HSBC가 외환은행 인수에 한 걸음 더 다가섰다. ‘외환은행 헐값 매각과 외환카드 주가 조작 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이 존 그레이켄 론스타 회장에 대한 사법처리를 유보했기 때문이다.
 
금융계 관계자는 “론스타가 논란의 핵심인 외환은행 대주주로서의 자격 여부에 대해 어느 정도의 면죄부를 받은 셈”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HSBC의 외환은행 인수 승인권을 쥔 금융 당국도 마냥 승인을 미루기 어렵게 됐다.
 
지난해 말 HSBC는 외환은행 인수 승인을 요청했지만, 금융 당국은 재판이 진행 중이란 이유로 결정을 미뤄왔다.
 
그레이켄 회장은 24일 오전 전용기 편으로 인천공항에서 출국하기에 앞서 발표한 e-메일 성명에서 “검찰 조사에 전적으로 협조했으며 필요하면 앞으로도 협조할 것”이라고 말했다. 외환카드 주가 조작 사건에 대한 검찰 조사에 불응해 ‘기소 중지’ 상태였던 그레이켄 회장은 9일 입국해 검찰의 강도 높은 조사를 받았다. 그러나 결과는 ‘사법처리 유보’였다.
 
검찰은 “1차 수사가 끝났을 뿐 아직 수사가 종결된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금융계에선 검찰의 이번 조치를 사실상 ‘무혐의’ 결정으로 보고 있다. 10일간의 조사에서 검찰은 외환카드 주가 조작과 관련한 그레이켄 회장의 결정적인 혐의를 찾지 못한 만큼 더 이상 사법처리는 어려울 것이란 분석이다. 게다가 국제 금융계의 거물급 인사를 확실한 증거도 없는 상태에서 재소환하기도 쉽지 않다. 해외 여론도 호의적이지 않다.
 
검찰의 사법처리 유보 소식에 론스타 측이 “좋은 뉴스며 환영할 만한 일”이라고 입장을 밝힌 것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검찰이 그레이켄 회장을 기소하지 않음에 따라 다음달 1일로 예정된 외환카드 주가 조작 사건에 대한 법원의 1심 판결이 외환은행 매각의 고비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물론 외환은행 헐값 매각 공판은 장기화할 조짐이다. 하지만 1일 판결에서 대주주 적격성과 관련해 론스타에 유리한 결정이 내려지면 금융 당국으로서도 HSBC의 외환은행 승인 심사를 늦출 명분이 줄어든다.
 
이에 대해 금감위 고위 관계자는 “법원의 판결 전까지는 승인 결정을 내릴 수 없다는 기존의 입장에 변화가 없다”며 “다만 승인 시점이 1심 판결 후가 될지, 최종심 판결 후가 될지는 판결 내용에 따라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김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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