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대표단 挺身隊회의 참석 의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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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북한 사람들이 26일 서울에 온다.27일부터 서울에서 열리는「제3차 일본군 위안부문제 아시아연대회의」에 참석하기 위한 대표단이다.이들의 남한 방문은 얼어붙은 남북 관계에 물꼬를 터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에 부풀게 한다.
미국 의회나 정부 인사들은 지난 연말 헬기사건 때도 판문점을거쳐 남북을 왕래했다.그러나 남북한 사람이 판문점을 통과한 것은 지난 93년11월 남측 정신대 대책협의회 대표들이 마지막이었다. 지난해는 전쟁 위기로 치달을 정도로 한반도 정세가 긴장된데다 김일성(金日成)이 죽고난 뒤에는 조문 파동을 거치면서 모든 접촉 창구가 얼어붙어버렸다.
그런 의미에서 북측 대표단의 이번 서울 방문은 비록 국제회의를 명분으로 걸었지만 작은 진전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주목할 부분은 북측이 판문점 통과를 원했다는 점이다.북측이 지난 8일 남측 정대협의 초청을 받아들인 뒤 남측당국은 정대협을 통해 제3국 경유를 권유했다.판문점을 통과하려면 신변안전보장을 위해 당국간 접촉이 불가피한데 당시 북 측 태도로 보아 이 문제로 회의 참석이 무산될 수도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북측은 당국간 대화는 물론 지난해 8월4일이후 전통문 접수조차 거절해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23일 북측대표단 신변보장각서를 전달하는 연락관 접촉을 하자는 전통문을 받아들여 7개월만에 접촉 창구를 다시 열었다.26일 오전에는 북측 대표단이 내려오기 전 연락관 접촉에도응할 것으로 보인다.
물론 북측이 이 회의에 참가하는 데는 곧 재개(再開)해야할 북한-일본 수교교섭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한 계산도 깔려있다. 북한은 91년1월부터 일본과 수교교섭을 벌이면서 줄곧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진상규명과 보상」을 요구했다.또 92년2월 제6차 고위급회담에서 남북 공동대응책 협의를 요구한 이후남북 공동대응을 줄기차게 제기해 왔다.핵문제와 관련한 韓-日 공조체제에도 영향을 미치는 일거양득(一擧兩得)의 효과를 노린 것이다. 북측 대표단의 서울 방문 허용은 남측당국 태도도 미묘하게 변하고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지난 92년 8월 서울에서열린 제1차 회의 때는 북한대표단 참가를 막았었다.그런데 이번에는 국제회의라는 명분으로 남북 민간 교류의 숨통을 텄 다.「당국간 대화 우선 정책」에서 한발 물러선 셈이다.
통일원의 한 관계자도 평양에서 국제회의가 열린다면 남측 인사를 보내겠다고 말하고 있다.심지어 4월 평양축전에 이산가족이란명분으로 손기정씨 같은 이북출신 체육.문화인을 초청할 경우 긍정적으로 검토할 수 있다고 한다.
물론 북측이 공식적으론 당국간 대화를 철저히 거부하고 있어 김정일(金正日)이 취임하기 전에는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그러나 이 회의는 그 이전이라도 평양과 서울에서 열리는 국제회의들을 통해 조심스럽게 분위기를 바꿔나갈 수 있지 않겠느냐는 조심스런 기대를 갖게 한다.
더구나 나웅배(羅雄培)부총리는 취임 직후『당국간 대화외에 경제.문화.학계의 교류도 함께 해야 한다』고 말해 이같은 낙관론을 부추기고 있다.
〈金鎭國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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