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생각은…] 중국 눈치보는 외교 끝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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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경기도 이천 화재 참사에 대한 중국 지도부의 즉각적이고 효과적인 조치와 태도는 정말로 부럽기만 했다. 원자바오 총리는 물론 후진타오 주석까지 나서 희생자의 합당한 처리를 한국 정부에 요청한 데 이어 유사 사건의 재발 방지에도 노력해 달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자국민의 안전과 희생에 대한 중국 정부의 지대한 관심과 발빠른 대처는 지난해 7월 베이징의 한 병원에서 링거액을 맞다가 사망한 주중대사관의 황정일 공사 사망사고 처리에 대한 우리 정부의 재외국민 정책과 너무도 차이가 나 씁쓸할 뿐이다.

황 공사 사건의 경우 외교적 차원에서 해결하겠다는 외교부장관의 말과 주중 한국대사의 철저한 사고 원인 규명 약속에도 불구하고 보상이나 배상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올림픽을 앞두고 있는 중국으로서는 외국 주재원들이 많이 이용하는 병원에서 의료사고가 발생한 사실을 인정하기 두려웠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당초 최대한 성의있는 국제적 수준의 보상을 약속했던 중국 정부와 해당 병원은 “의료 수준이 보장되지 않는 동네 병원에 간 당사자의 책임이 크며 병원과 의사는 과실이 없으므로 법적인 보상 책임이 없다”고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한 나라를 대표했던 고위 외교관의 사망 처리가 이럴진대 평범한 일반 국민이 사고를 당했다면 과연 어떠했을까. 중국에 거주하고 있는 우리 국민이 곧 100만 명에 이르게 되고 이들의 안전과 인권, 재산은 철저하게 보장받아야 한다. 그런데 중국은 법적·제도적 투명성이 보장되지 않고, 거대한 커넥션(관시)에 의해 움직이는 ‘관민유착’ 사회다. 자국민 안전의 최일선에 있는 현지 공관과 정부의 관심·의지, 도움 없이 개개인이 법적으로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치기라고 할 수 있다. 중국에 살아 본 사람은 다 아는 상식이다.

중국 눈치보기라는 비난을 받고 있는 대중 외교가 이제는 할 말 다 하고, 요구할 것은 요구하는 대등한 위치로 격상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의 영사가 백주에 폭행을 당했는데도, 공관에서 주선한 민박집에 묵던 탈북자가 중국 공안에 잡혀 북한으로 송환되었는데도 항의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다. 이는 중국과의 문제는 중국 정부를 자극하지 않고 조용히 해결한다는 소극적인 ‘저자세 외교(low profile diplomacy)’에서 비롯된 것이다. 국제적 외교관례를 무시한 채 한국의 대통령 당선인이 먼저 특사를 파견해 주기를 요구한 결례도 이제는 더 이상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중국에 대한 시각과 정책도 바뀌어야 한다. 중국에 대한 지나친 환상과 의존에서 벗어나 우리도 중국에 더없이 중요한 존재임을 인식시켜야 한다. 지적재산권 문제로 중국을 도둑에 비유한 미국 대표에게 ‘강도’라고 받아쳤던 우이 전 부총리의 배짱과 의지가 아쉽게 느껴진다. 새 정부 출범과 함께 실리와 함께 명분도 잃지 않는 당당한 대중 외교를 기대해 본다.

금희연 서울시립대학교 국제관계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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