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작기행>미국 "페미니즘 해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5면

지난해말 우리나라에서도 페미니즘을 비판한 작가 유순하씨의 『한 몽상가의 여자론』(문예출판사刊)이 발표돼 화제가 됐었다.그러나 정작 이 책에서 비판 대상이 됐던 페미니스트들의 반응은 한마디로 「문외한인 주제에」라는 식의 철저한 무시 였다.그렇기는 페미니즘이 비교적 체계가 잡혔다는 미국에서도 마찬가지다.지금까지 상당한 설득력을 지닌 페미니즘 비판서가 줄기차게 출판돼왔지만 다른 분야 사람들의 관심만 끌었을 뿐 여성계로부터는 오히려 페미니즘을 상업적으로 이용한다는 비난을 받기 일쑤였다.
최근 미국에서 발표된 페미니즘 비판서 『페미니즘 해부』(원제Professing Feminism.New Republic/Basic Books刊.2백35쪽.$24)는 여성학계안에 대단한파문을 일으키고 있다.이 책의 저자가 바로 현 재 미국 여성학계의 주류에 서서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더페인 파타이 매사추세츠大교수와 노리타 쾨르트게 인디애나大교수이기 때문이다.
이 책에는 각 대학 페미니스트들의 활동전략과 문제점,그로부터야기되는 암적인 결과,파벌간 전투장이 돼버린 여성운동권의 실상,여성학계의 불관용과 이데올로기적 경직성,추악한 이데올로기 게임이 적나라하게 소개될 뿐 아니라 저자 자신들의 자기비판도 담겨 있다.저자들은 이 책의 신빙성을 높이기 위해 전국 주요대학의 교수와 학생,학교관계자 수십명을 인터뷰했다.
인터뷰에 응한 교수들의 증언을 보면 한결같이 페미니즘운동의 실상에 실망을 느끼면서도 교단을 박차고 나가지 못한 채 고개숙이고 살아가는 자신에 대한 자조와 환멸이 가득하다.한 여성 교수의 증언을 들어보자.
『언젠가 강의를 하면서 강의시간내내 공포에 떨어야 했던 기억을 지울 수 없다.그때 수업을 받던 학생들은 몇개 그룹으로 나누어져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었다.레스비언들과 다른 학생들이 앉아 있었는데 여차하면 서로 맞붙어 싸울 태세였다.
일부 학생은 심지어 교수인 나에게까지 적대감을 늦추지 않는 바람에 그날 수업은 완전히 망가져 버렸다.』 학생들의 증언은 더욱 가관이다.세미나장에서는 급진적인 페미니스트들이 반대그룹의기세를 누르기 위해 온갖 위협을 동원하고 아리스토텔레스에서 프로이트까지 남자들의 작품이면 깡그리 무시하는 것을 원칙으로 정한 페미니스트 단체까지 있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저자들은 이같은 페미니즘이 당초의 명분에서 크게 퇴색한 원인을 아카데미 활동이었던 페미니즘이 처음부터 정치운동과 결부된데서 찾고 있다.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졌다는 지적이다.
무시받던 여성의 삶과 그들이 안고 있는 문제에 대한 정보를 공개화하고 여성의 삶을 최우선적인 연구대상으로 삼는다는 여성학본래의 목표가 정치적 안건에 밀려버린 것이다.
이렇게되자 학교 교수들도 뭔가 가치있는 커리큘럼을 개발하기 보다는 캠퍼스내 운동권에 관심을 기울이게 됐고 학생들도 여성의지위 전반에 대한 향상보다는 포르노나 낙태,성의 상품화,강간등지엽적인 이슈들에 더 관심을 기울이게 되는 악 순환이 거듭되고있다고 저자들은 지적하고 있다.
〈鄭命鎭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