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바람 맞은 알몸연기 극단마다 "몸단속"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5면

연극배우들의 낯 뜨거운 「알몸연기」가 무척 조심스러워졌다.
지난 여름부터 외설공방끝에 검찰이 최근 끝내 공연음란혐의로 연출겸 제작자를 전격 기소하는 바람에 공연사상 처음으로 외설여부가 법정에서 가려지게 된 연극『미란다』사건 이후 달라진 대학로 연극가의 풍속도다.
실제로 현재 공연중인 상당수의 연극들이 너무 야한 대사나 장면을 삭제하거나 재손질했는가 하면 객석을 향해 도발적으로 펼치던 풋내기 여배우들의 정면 전라신도 뒷모습으로 대치했다.위험을무릅쓰고 무작정 벗길 필요가 있느냐는 연극인들의 심리적 위축에다 종전처럼 벗긴다고 해서 흥행도 1백% 보장되지 않는다는 「달라진 현실」때문이란 분석이다.
이런 탓인지 한때 눈요기하려고 비좁은 객석을 꽉 메웠던 남성직장인들의 발길이 대폭 줄어버렸고 「혹시나」했던 20대 대학생층의 외면현상도 가세,대부분의 소극장 객석들이 텅빈 상태다.
일부 장면이 손질된 대표적 무대는 극단「예군」이 공연중인 『욕망의 섬』(연출 김혁수).한때 『백양섬의 욕망』으로 무대에 선보였다 지난해 6월 벗기기경쟁에 편승해 여배우의 전라연기로 톡톡히 재미를 본 『욕망의 섬』은 이번 공연에선 여배우가 뒤로돌아 옷을 벗는 것으로 그쳤다.사실 원작에서는 작품진행상 정면의 전라연기가 필수적이란 게 중평이나 연출자는 고심끝에 이를 손질했다.
독일의 상징주의 연극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하이네 밀러 원작의『햄릿머신』(극단 거보.연출 김재운)도 비슷한 케이스.93년 공연당시엔 여자 관객들이 얼굴을 돌릴 정도로 남자 배우 4명이무대에서 완전 나체를 보였으나 올 재공연에서는 문제의 전라연기가 슬그머니 사라져 버렸다.
하는 일이 모두 짜증스러운 노화가와 젊은 여모델과의 농염한 침대신이 화제가 된 『권태』(극단 사하.연출 송종석)도 마찬가지다.반라의 상체로 침대위에서 진한 베드신을 하던 여배우에게 옷을 걸치게 했다.대신 붉은 조명과 음악으로 분위 기를 처리했다. 탄탄한 실력자로 소문난 박계배 연출의 『철수와 영희』까지그냥 두어도 별 문제될 것 없는 장면들을 삭제.수정해 공연중이다.92년 『프랭키와 쟈니』로 파랑새 극장에서 공연됐다 개작돼이번에 다시 무대에 올려진 이 연극에선 당초 진했 던 어둠속의첫 장면을 아예 삭제해버렸다.
그렇다고 소극장 연극들이 흥행만을 노린 알몸연기에 대한 미련을 완전히 떨쳐낸 것 같지는 않다.호주머니 사정이 딱한 극단들이 호기심만 자극하는 「1회성 장사」의 달콤한 유혹을 좀체로 잊기는 사실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대부분의 연극인들은 『미란다는 어디까지나 연극장이들관상관없는 하나의 돌출사건』이라며 애써 무표정한 표정들이고 『표현의 자유 제한은 어떤 이유에서든간에 잘못』이란 볼멘소리도 대단한 편이다.옳고 그름을 떠나 표현의 자유에 편 승한「벗기기」연극은 언제든지 비집고 나올 틈새가 있다는 얘기다.더군다나 연극『미란다』에 대한 법원판결을 지켜봐야 하겠지만 면죄부를 받을경우 「옷 벗기기」경쟁은 오히려 전보다 더 노골적으로 되살아날소지가 많다는 지적이다.오히려『말 썽나면 더 좋다』는 일부 연극인들의 자세는 아직도 여전하기 때문이다.
정진수 연극협회장(51)은『벗기기로 한탕하려는 사람에겐 분명제동이 걸렸지만 궁극적으로 예술적 양심과 표현의 자유는 예술자스스로의 판단에 맡겨야 한다』고 말했다.당장 급한 돈이냐,작품성 추구냐의 기로에서 대학로 연극이 어떻게 스스로의 살길을 선택해 갈지 주목된다.
金光洙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