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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책읽기Review] 세종 리더십의 원천은 ‘워커홀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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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세종처럼
박현모 지음,미다스북스
496쪽, 2만5000원

이산 정조,
꿈의 도시 화성을 세우다
김준혁 지음, 여유당
368쪽, 1만5000원

정권 교체기. 새 정부에 대한 기대가 가장 클 때다. 그래서인지 역대 군주들의 리더십이 새삼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대왕’으로 칭송됐던 성군의 대명사 조선 세종과 정조에 대한 재조명이 한창이다. TV 사극 ‘이산’과 ‘대왕세종’도 그 바람에 한몫 한다. 출판계에서도 세종과 정조에 대한 책들이 줄을 잇고 있다. 그 중 세종의 리더십과 정조의 개혁정신에 초점을 맞춘 두 권의 책을 짚어본다.

일러스트=이정권 기자

좋은 리더십이란 어떤 것인가 하는 질문에 가장 먼저 떠올리는 우리 역사 인물은 단연 세종 대왕이다. 한글 창제라는 업적 하나만으로도 그를 넘볼 사람은 없을 것이다. 게다가 측우기로 대표되는 과학 발전과 『농사직설』 편찬으로 농업을 일으키는 등 실제 생활에 와 닿는 치용(致用) 정치의 기반을 크게 다졌으니 성군(聖君) 중 으뜸이요, 리더 중의 리더다.

세종 리더십의 실체는 다양한 것을 한데 모아 가는 조화와 타협, 강단이 있으면서도 남을 받아들이는 포용의 능력에 있다. 경우에 따라 입장을 바꾸는 실용적 취향이 강했지만, 그 밑을 떠받쳐 주는 것은 백성에 대한 변치 않는 애정이었다. 다양한 능력과 흔들리지 않는 의지, 여기에 함께 갖춘 이상이야말로 최강의 리더십이 우러나는 근간이다.

이 책은 1만원권 지폐에서 자주 보는, 업적 몇 가지 정도만 떠오르는 세종이라는 평면적 인물에 숨결을 불어넣고 있다. 그 힘은 세종의 주요 언행을 적은 조선 실록을 찬찬하고 치밀하게 읽어낸 노력에서 나온다. 원래 막스 베버와 조선 정조(正祖)를 주로 연구했던 저자는 베버의 ‘지도적 정치가’의 형상과 개혁군주 정조가 가장 존경한 인물에서 ‘세종’이라는 정수를 추출해낸다. 저자는 세종의 리더십을 마인드맵으로 구성해 ▶인간적 측면 ▶인재경영 ▶지식경영 ▶국방외교경영 ▶북방영토경영 ▶창조경영 ▶감동경영 등 경영학 교과서 형식으로 풀어냈다.

인재경영이 어디 쉬우랴. 인재를 가리켜 “천하 국가의 지극한 보배”라고 말한 세종에게도 그들을 가려내는 일이 제일 어려웠던 모양이다. 해법을 찾기 위해 그는 과거 시험문제로 현재 조정에 닥친 난제를 털어놓고 신선한 아이디어를 듣기도 했다. 1474년의 과거 시험 문제가 ‘인재를 쓰는 법’이었다. 여기서 장원으로 급제한 강희맹은 “세상에 완전한 사람이 없으니 적합한 자리에 기용해 인재로 키우라”고 답했다.

인재를 쓰기 위해서는 “뇌물죄나 횡령죄를 범한 관리의 자손일지라도 진실로 현능하다면 등용한다”는, 다소 과감한 원칙을 내세웠다. 반역자의 아내를 집의 동굴에 숨겨 준 뒤 간통했던 정승 황희, 형인 양녕대군의 대권 승계를 주장하면서 정작 자신의 등극에는 반대했던 정치 파벌을 감싸안아 내 사람으로 만드는 방법을 체득했던 여러 얼굴의 통치자다.

인간적인 면모도 엿보인다. 그는 뚱뚱한 사람이었다. 식사를 할 적마다 고기가 없으면 입맛을 잃고, 보통 하루에 네 끼를 먹어 치울 만큼 식성이 좋았다.

부왕인 태종이 걱정할 정도로 독서에 매달렸는가 하면, “이제 그만 하시옵소서”라는 신하들의 험구에도 아랑곳없이 무예를 중시하는 ‘강무(講武)’의 열성팬이기도 했다.
 
시도 때도 없이 “공부 좀 더 합시다”라며 신하들을 데리고 정책 토론장인 경연(經筵)으로 나앉는 워커홀릭이었다가 병고에 시달리는 어미 원경황후를 모시고 내시 둘만을 대동한 채 이 절 저 절을 옮겨 다니는 효자이기도 했다.

책을 읽고 나면 세종이 그려진다. 뒤뚱거리는 ‘보디라인’을 지녔지만 어디 한 구석도 놓치지 않으려는 빽빽하고 치밀한 정신의 소유자.
 
KBS 대하 사극 드라마 ‘대왕 세종’에 맞추려는 시도가 엿보였다면 지나친 말일까. 천편일률적인 칭송도 부자연스럽다. 그럼에도 책 읽기를 마칠 때면 지갑에 지녔던 1만원 권의 지폐를 꺼내 보게 한다. 대왕의 진짜 얼굴이 어떨까를 상상하면서 말이다.

 
유광종 기자

『이산 정조…』저자 김준혁씨“백성 고통 더는 게 개혁”

“정조는 백성들을 국가의 주체 중 하나로 인식한 군주였습니다. 그래서 개혁의 방향도 백성의 고통을 덜어주는 쪽으로 추진했지요.”
 
『이산 정조, 꿈의 도시 화성을 세우다』의 저자 김준혁(42·사진·수원시 학예연구사)씨는 “정조의 개혁정책의 핵심은 위민정신”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정조의 대표적인 민본 정책으로 ‘서얼 허통’을 꼽았다. 정조는 서자들이 관직에 나갈 수 있는 법을 제정해 적자나 서자에 관계없이 유능한 인재를 등용했다. 이 때 발탁된 서자들이 바로 실학자로 이름난 이덕무·박제가·유득공 등이다.
 
국방 개혁 역시 백성들의 짐을 덜어주기 위해 마련됐다. “병자년의 치욕을 극복해 더이상 백성들에게 고통을 주지 말자는 뜻이었죠. 임진왜란·병자호란의 패배원인을 분석해 강력한 군사시설인 화성을 만들었고, 화학을 이용한 신무기 실험도 했지요.” 또 정조가 정예부대 ‘장용영’을 만든 데는 균역법을 혁파하려는 뜻이 컸다고 한다.
 
“정조가 마지막으로 추구한 개혁은 노비제도를 완전히 없애는 것이었죠. 신분 해방을 통해 누구나 동등한 평등 사회를 만들자는 것이었으니, 전근대 사회에서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었던 혁명과도 같은 수준의 개혁이었습니다.”
 
수원시 학예연구사로 화성에 대한 학술 연구를 맡고 있는 김씨는 화성 성곽 옆 중·고교를 다녔던 수원 토박이다. 그런 만큼 화성이 갖는 의미에 대한 애착도 남다르다. 거중기를 사용하고 돌과 돌 사이에 석회를 바른 과학적·실용적 사고, 일하는 노동자들에게 영양제와 급료·솜옷·털모자까지 지급했던 애민정신…. 그는 “화성은 정조시대 정신과 사상의 결정판”이라며 자부심을 슬몃 내비쳤다.

글=이지영 기자, 사진=김수신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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