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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시평>세계화와 재벌6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대기업 부장인 아버지와 대학생 아들이 함께 TV뉴스를 보고 있었다.마침 뉴스엔 연예인과 부유층 인사들이 포함된 대마초 흡연 구속자 명단이 발표되고 있었다.가수 누구에 이어 재벌2세 金아무개,재벌의 6촌 李아무개 이런 식의 명단이 줄줄이 나오면서 마치 재벌과 대마초가 무슨 깊은 관계가 있는양 뉴스 보도는계속되고 있었다.이를 본 아들이 물었다.『아버지 제가 대마초 피우다 걸리면 재벌회사 金부장의 아들 金아무개가 되겠군요.』아버지는 얼굴만 붉힌채 대답을 못했다.
어째서 이런식 여론재판이 아직도 성행할 수 있는가.그냥 자연인 누구하면 무미건조하고 가수.교수,여기에 재벌의 6촌이라도 끼어야 시청자의 눈이 번쩍 뜨이고 누가 「명단남」인지 관심을 쏟기 시작하는 선정주의가 발동하는 탓 아닌가.이러 니 10부제위반자에게 벌금만 물리는게 아니라 명단도 공개하겠다는 발상까지등장한다.
재벌이라는 말 자체는 기업군(企業群)을 거느리는 대기업의 총수를 뜻하지만 언제부터인지 군벌.학벌등과 같이 좋은 의미보다는나쁜 의미로 사용되는게 보통이다.왜 우리는 기업,그중에서도 대기업과 대기업 총수를 나쁘게만 보게되었는가.여기 에는 세가지 정도의 이유가 있다고 본다.재벌=부정축재자,재벌2세=7공자,재벌경영=문어발 경영이라는 세가지 등식때문이라 생각한다.
재벌=부정축재자라는 시각은 5.16쿠데타이후 군사정권의 등장과 함께 부정축재자 명단이 나오고 이들 재산을 국고환수한다는 발표가 나오면서부터 생겨난 고정관념이다.부정한 방법으로 번 돈은 국가가 몰수한다는 파쇼적 감정이입(移入)이 통 치술로 이용되면서 정권을 강화할 때마다 재벌과 깡패는 단골 속죄양(贖罪羊)이 되었고 여론재판의 조리돌림을 당해야 했다.
둘째가 재벌 2세=부도덕자로 보는 부정적 시각이다.경영권을 인수하기 전에는 황음무도한 나날을 사는 부도덕한 황태자나 공자로 묘사되고,2세 경영자가 되면 철 모르는 애송이로 평가받으며어디엔가 흠집을 내보고 싶은 충동을 일으킨다.언 론도 이에 편승해 아버지를 잘 두어 무임승차하는데 대한 시샘이 분노로 작동하게끔 여론을 이끌었다고 볼 수도 있다.이래서 아직도 재벌 6촌의 대마초 흡연이라는 웃기는 관형사가 붙게된다.
세번째 문어발 경영에 대한 부정적 시각은 약자인 중소기업을 봐줘야 한다는 도덕적 반발심리와 함께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그러나 군사정권시절 정경유착(政經癒着)이라는 왜곡된 관행때문에 재벌의 독주를 막아야만 국가 경제가 살아난다는 잘못된 여론을 형성하는 쪽으로 작용하게 되었다.
이 모두가 파쇼 정권의 통치술로 조작된 잘못된 고정관념임에도불구하고 문민시대의 세계화 정책의 나팔소리가 웅장한 지금까지 살아 기업과 기업주 위상을 망가뜨리고 있다.
세계화란게 무언가.막연한 수사(修辭)가 아니라 국경없는 경제전쟁과 정보 기술전에서 어떻게 살아남는가 하는 절박한 생존방식이다.그렇다면 누가 정보기술과 경제전쟁의 주체고 전사인가.기업이고 기업주고 비즈니스맨이고 기술자고 근로자다.치 열한 전쟁일수록 그 상대는 다국적 거대기업이다.이에 대항하려면 우리의 전사도 기업이어야 하고 야전사령관은 기업주가 될 수밖에 없다.작은 기업,큰 기업 가릴 것 없이 제각기 맡아야 할 전선(前線)이 있고 익숙한 분야가 있게 마련이다.
국경없는 경제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그것이 일본이든 미국이든 때로는 연횡(連衡)하고 때로는 합종(合縱)하는 자유자재의 신축성을 보여야 한다.
그러나 우리 현실은 아직도 다리만 무너지면 재벌의 도덕성에 책임을 몽땅 덮어씌워 끝내는 국제 입찰 공사에서 한국 건설회사가 무더기 탈락하는 참담한 결과를 가져온다.외국에 집 한채만 사면 외화도피로 몰려 감옥을 가야 하고,얼굴도 모 르는 6촌이대마초를 피운다고 부도덕한 재벌이 되는「도덕지상주의」풍토에 살고 있다.
이런 풍토속에서 과연 대기업이 국경없는 경제전쟁에서 살아남을수 있는 전력(戰力)과 경쟁력을 키우고 확보하면서 세계화 전략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인가.
***企業은 경제戰 戰力 기업과 기업주에 대한 오도된 고정관념을 벗어버리지 않는한 우리의 세계화 전략은 성공할 수 없다.
적어도 우리가 국경없는 경제 전쟁에서 살아남고 지금 구호만 무성한 세계화 전략의 실체를 바로 세우고 전략을 짜기 위해선 이들 산업전사들 을 영웅으로 떠받드는 풍토 조성을 과감히 새롭게하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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