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드 너마저 … 폭락장에 올 처음 돈 빠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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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올 들어 국내 주식형 펀드에서 처음으로 돈이 빠져나갔다. 이 때문에 17일 증권시장에선 외국인 매도 공세에 그나마 주식시장의 버팀목이 돼 줬던 펀드 자금마저 이탈하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가 확산했다. 개장 초 오름세로 시작했던 증시는 국내 주식형 펀드에서 돈이 빠져나갔다는 소식에 코스피지수가 한때 1700선 아래로 밀리기도 했다.

그러나 오후 들어 연기금이 적극적인 매수에 나서고 주식형 펀드 자금 이탈이 본격화한 것은 아니라는 분석이 나오면서 18.58포인트(1.09%) 상승으로 마감했다. 국내 주식형 펀드 자금 유입이 주춤한 사이 그동안 외면당했던 머니마켓펀드(MMF) 수탁액은 올 들어 2조원 넘게 늘었다. 주가가 계속 빠지자 주식형 펀드 대신 단기 상품인 MMF에 돈을 넣어 놓고 관망하는 투자자가 그만큼 늘었다는 얘기다.

◆주춤한 국내 주식형 펀드=굿모닝신한증권에 따르면 국내 주식형 펀드 설정액은 15일 현재 70조4303억원으로 전날보다 3983억원 늘었다. 그러나 결산 후 재투자된 4471억원을 빼면 실제로는 488억원이 빠져나갔다. 그간 국내 주식형 펀드에는 증시 약세에도 불구하고 저가 매수 자금이 꾸준히 유입됐다. 덕분에 14일에는 처음으로 주식형 펀드 설정액이 70조원을 넘어섰다.

그러나 조정세가 이어지자 펀드 투자자도 동요하는 모습이다. 국내 주식형 펀드에서는 자금이 빠져 나가고, 대신 지난해까지 쪼그라들던 MMF로 돈이 몰렸다. 15일 기준 MMF 수탁액은 49조1610억원으로 지난해 말보다 2조4230억원 늘었다.

◆환매 사태 일어날까=아직은 국내 주식형 펀드에 대량 환매 사태가 일어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실제로 16일 국내 주식형 펀드로는 1565억원이 유입됐다. 굿모닝신항증권 이병훈 연구원은 “일별 증감액을 보면 아직은 투자자가 환매 쪽으로 방향을 튼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주가가 많이 떨어지자 지금이 매수 기회라고 보는 투자자와 차익을 실현하고 시장을 지켜보자는 투자자가 팽팽히 맞서 있는 형국”이라고 설명했다. 언제든 돈을 뺄 수 있는 MMF로 돈이 몰린 것도 아직은 투자방향을 정하지 못한 돈이 많음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다만 외국인 팔자 공세에도 불구하고 펀드의 힘으로 지수를 밀어 올렸던 지난해와 같은 상황은 기대하기 힘들다는 평가가 많다. 예금 금리가 7%까지 치솟은 것도 변수다. 푸르덴셜투자증권 김진성 연구원은 “예금이 투자 대안으로 고려되지 않던 ‘절대 저금리 시대’는 끝났다”며 “신규 투자자는 주식 이외에도 채권·예금을 고려하기 시작했다”고 풀이했다.
 
◆여전한 쏠림 현상=국내 주식형 펀드로 유입된 돈은 미래에셋자산운용의 펀드에 집중됐다. 올 들어 돈이 많이 들어온 상위 4위 펀드가 모두 미래에셋 상품으로, 주로 대형주에 투자하는 펀드다. 이 때문에 미래에셋 펀드가 주로 투자한 종목이 외국인 매도 공세의 표적이 되기도 했다. 증시 일각에선 미래에셋 펀드가 휘청거리면 펀드시장 전체가 타격을 입을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해외펀드도 최근 중국시장이 흔들리자 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에 분산 투자하는 브릭스 펀드로 돈이 몰렸다. 15일까지 돈이 많이 몰린 상위 4위가 모두 브릭스 펀드였다. 하지만 브릭스 펀드도 국가별 투자 비중에 따라 수익률에 큰 차이가 나기 때문에 투자 비중을 꼼꼼히 챙겨보라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고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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